※ 이 글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민주당이 참패한 것을 보면서 쓴 것이다. 4월 10일 경 페이스북에 업로드되었고, 이를 블로그에도 게재한다.

 

대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한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고, 고백하자면 난 아직도 대학생위원회에 남아있다. 이렇다 할 활동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전히 대학생위원이긴 하다. 꼴에 여전히 교육팀장이란 직함은 있다. 그러나 이곳에 있으면서 절망감을 느낀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실 절망감이랄 것도 없다. 어쩌면 분노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 글은 이런 분노들을 편견과 사심 꾹꾹 담아 표현해보려 쓰는 글이다.

 

2030이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고 하는데 거시적인 분석은 제쳐놓고 내부적으로 바라보자. 민주당이 소위 ‘청년’들을 어떻게 대했나? 민주당의 청년 계층은 20대부터 40대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40대도 청년으로 쳐준다. 이게 참 말이 안되는 소리 같은데 여하튼 40대도 청년이라고 한다. 45살까지는 청년으로 쳐준다는 것.

 

이게 애초에 말이 안 되는데, 현재의 20대와 40대는 20년이라는 세월의 격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정치적 영향력, 사회적 지위, 인맥, 재력 모두 다를 수 밖에 없고, 아주 당연히 40대가 20대를 압도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현재 ‘청년’이라고 명명되어진 이 40대들은 지난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박근혜 탄핵이라는 에너지를 등에 업고 대거 정계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 차원에서도 이들에게 대거 공천을 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에서 부르는 ‘청년’ 계층 중 실질적으로 정치적 수혜, 즉 의회 진출의 기회를 입은 집단은 이들 30대, 40대, 그것도 일정한 독립적 생활력을 갖춘 사람들 뿐이다. 그렇다면 20대는 어떤가? 소위 ‘대학생위원회’로 명명된 20대 집단은 어떤 성과를 거두었나?

 

전용기 당시 전국대학생위원장을 비례로 내보내고 당선시킨 것 하나다. 그러나 이게 정말 대학생위원회의 힘이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그 역시 자신의 역량이나 조직 기반을 갖춘 상태에서 당선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애초에 민주당이 강세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 탄핵의 여파였다. 20대 당원들도 이 때 대거 유입되었다.

 

그 많은 20대 당원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20대 집단을 충분히 잡아두기 위해 민주당은 무엇을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것도 안했다. 20대 대학생위원회에 대한 대우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동원령이 떨어진다. 그리고 이런저런 위촉장과 임명장을 뿌린다. 정당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으레껏,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어떤 지원도 끊긴다. 지원이래봐야 선배들이 가끔 술자리로 불러주는 것 이상이 아니다. 지원이 끊긴 조직은 와해되기 마련이다. 쉽게 와해되는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입장에서는 조직의 성장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성장한 조직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영달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유인이 커진다. 그렇게 지난 시기 ‘대학생위원회’라고 불리우는 조직은 수없이 점멸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세 가지 축으로 살펴보자면 하나는 20대 당원들의 속성이다. 이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진지 오래 되지 않았기에 당에 대한 충성도가 비교적 낮다. 게다가 학업과 생계라는 이중적 문제에 가로막혀 있으므로 이탈률도 높다. 정당 활동이라는 것 자체가 비용의 지출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당활동이 이들의 생계나 학업을 방해하게 된다면 이들은 당연히 정당으로부터 이탈하게 된다. 탈당까진 아니더라도 잠재적인 유령당원이 되기 십상이다.

 

다른 하나는 정당 차원에서의 대응이다. 20대는 이탈률이 비교적 높은 당원들인데다, 그들이 결성한 위원회라고 하면 당 입장에서는 이들을 유지하는 데 비용을 들일 유인이 적다. 비용을 들여봤자 이탈률이 유의미하게 낮아지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학생위원회를 유지하기 위해 지원하는 모든 비용은 사실상 매몰비용이 되어버린다.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조직을 유지하기 수월한 30대 중후반, 40대 이상 당원들을 붙잡는 것이 당 차원에서도 효과적이다.

 

세번째는 인력 수급의 문제다. 20대가 정치적 열망이 특별히 낮은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다만 조직이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조직을 구성하는 충분한 인력 풀이 있어야 한다. 높은 정치적 열망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를 보좌하고 지원할 인재풀이 없다면 그 사람은 성장하기 어렵다. 달리 말하면 인재들이 충분히 활동할 수 있도록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학생위원회의 활동은 앞서 말했다시피 거의 아무런 지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거나 소위 ‘선배’들에게 허리를 숙여야 한다. 조직 차원에서도 대학생위원회는 어린 연령대에 속하고 역사도 짧다보니 미시적인 수준에서 조직 간의 위계서열까지 작동한다. 대학생위원회가 자율성을 가지기 힘든 구조 속에서 능력을 가진 인재들이 핵심 간부로 열성적으로 활동해주길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대충 이렇다. 지금의 대학생위원회는 소위 말해 선거용 동원카드다. 그것도 공격력이 그렇게 높지 않은 카드다. 어차피 이탈률도 높고 충성도도 그렇게 높지 않으니, 공들여 관리할 유인이 낮다. 선거 때에만 전면에 내세워서 ‘우리가 이렇게 20대도 신경써요’ 하고 면피하면 그만인 집단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유능한 이들이 조직 내부로 진입해봐야 자신의 성장 가능성이 별로 없다. 오히려 열정만 열심히 불태우다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런 반론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학생위원회가 이룬 게 뭐가 있느냐고. 동원력도 낮은데 굳이 지원해줄 이유가 있느냐고. 실제로 “너넨 뭐하는 애들이냐?”라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난 그 말을 듣고 진심으로 분노했다. 뭘 했냐고? 아무도 지원해주지 않는 조직을 붙들고 조금만 참아보자며 다독이고 어떻게든 무너져가는 모래성을 다시 세워보려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잡히지 않더이다. 이게 지난 대학생위원회 활동에 대한 내 감상이다.

 

선거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일상시기는 더더욱 중요하다. 일상시기 대학생위원회는 그 어떤 조직보다 무너지기 쉽다. 생계도 해결해야 하고 학업도 바쁘다. 이들에게 정당 활동이라는 추가적인 비용을 지출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열정이 있으면 다 되는 게 아니다. 열정을 뒷받침해줄 물질적 비용이 필요하다. 20대들이 열정을 쏟을 만한 대안적 서비스들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걸 하려고 해도 지원이 전무하다. 20대들이 주변 사람들을 동원해보려고 해도 애초에 무당파가 많은 연령대라 정당 활동을 권유해보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동원이 시원찮으면 “동원 하나 못하냐”라고 핀잔이 돌아온다.

 

내가 보기에 민주당은 20대들이 처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민주당에 속한 소위 ‘선배 청년’들은 지금의 20대들이 처한 현실을 무시했다. 그저 술 좀 사주면 잘 따르는 어린 친구들, 조금만 구슬리면 열정페이로 동원할 수 있는 집단, 어려서 세상 물정 뭣 모르는 ‘애들’...동등한 유권자이면서 같은 눈높이에서 사회에 필요한 의제가 무엇이고 어떤 것을 공론으로 올릴지 토론하는 동등한 시민 자격이 아니라 언제나 아랫것으로 ‘다루어졌’다. 그 모든 것들이 켜켜이 쌓여 그 많은 20대 당원들을 놓치고, 그 결과가 선거참패로 나타난 것이다.

 

그럴듯한 직함이나 자리 몇 개 쥐어주고 생색내는 건 이제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너 나 도와주면 무슨무슨 자리 하나 줄게’라는 식으로 유인하는 짓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오히려 필요한 건 20대들을 공식석상에 앉혀놓고 어떤 의제를 논의하면 좋을지, 20대 당원들을 당 안으로 묶어두기 위해 어떤 지원들이 필요한지, 수많은 장애물을 뚫고 20대들을 조직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듣는 일이다. 세상 물정 몰라서 가르쳐야 할 후배들이 아니라 사회 문제에 동등하게 참여할 자격이 있는 동료시민으로서 대우하는 일이다.

 

지나가다가 ‘민주당이 패배한 이유는 20대를 무시했기 때문이다’라는 글을 읽었다. 그냥 문득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서 적어보는 생각들이다. 뭐 내가 대학생위원회 활동을 하면 얼마나 했겠는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