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라고 오랜만에 본가에 찾아왔다. 사실 나는 본가에 오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어머니와 사이가 그렇게 좋지도 않거니와, 집구석을 생각하면 내 인생을 꼬아놓을대로 단단히 꼬아놓은 곳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에. 지금이야 어머니와 그냥 데면데면하니 그럭저럭 다투지 않고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한구석에서는 집구석과 영영 결별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점 때문인지 요즘은 '가정'에 대한 욕망도 조금씩 생겨나는 중이다. 화목까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누군가 반겨주는 가정. 혼자 사는 집에 올 때마다 휑한 공기가 너무 적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본가에 오면 그 적막함이 때때로 증폭된다. 집에 오는 중이라는 어머니의 전화 한 통, 집에 먹을 거 없냐는 동생의 무심한 한 마디, 뭐 이런 것들이 혼자 살 때 느꼈던 감정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아,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이런 게 없었는데. 늘 있었던 일인데 이제는 명절에서야 느껴지는 감정이 되었구나, 싶어서.
또 한켠에서는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가 사무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비록 집구석은 내게 지옥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괴로운 기억을 많이 안겨준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과연 엄마의 본심이겠는가, 라는 생각이 스치면 문득 마음이 시려온다. 나는 엄마에게 심한 말도 참 많이 하고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는데 출가한 이후 이렇게 가끔 찾아오는 아들에게조차 예전과 변함없이 대해주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 아린 마음이 더 커진다.
제 뜻대로 되는 삶이 어디 많겠느냐만, 엄마 또한 풍진 삶을 살았고 여전히, 앞으로도 이 풍진 삶을 이겨내려고 노력하겠구나. 이 사람 또한 내게 말하지 못한 후회가 참 많겠구나. 어쩌면 우리에게 죄인이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겠구나.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데도, 누구를 탓해야 할 지 몰라 어쩔 줄 모르던 나의 분노를, 나의 원망을 받아내느라 많은 눈물을 삼켰겠구나.
솔직히 아직도 두렵다. 이제는 생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당신이 떠나갈 때가 조금씩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면 나도 모르게 몸서리 쳐진다. 그 때가 되면 나는 도대체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나는 아직 원망할 것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데. 원망이랄지, 아니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사무친다'는 단어만 떠오른다.
아무튼, 본가에 올 때마다 느껴지는 이 감정이 참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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