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중단한 지 오래 되었다. 세상에 대한 환멸이 늘어가는 김에, 그냥 그 동안 느꼈던 소회들이나 담담히 말해보려 한다. 아주, 지극히 모순 가득한 냉소적인 글이다. 문체는 그냥 내맘대로. 걸쭉하게 쓸란다. 길다. 난민 문제, 여성정치인, 그리고 최근에 터진 최지혜 사건까지.

(1) 어떤 사람의 글을 읽었다. 난민에 관한 글이다. "음, 뭐 그런 관점도 있구나." 정도로 읽어주면 아주 잘 대우해준 것이라 쳐줄만한 글이었다. 그러나 '난민을 받지 말자'라는 래디컬하신 분들의 주장을 정당화시켜주진 못한다. "이렇게도 생각해보자"라는 주장은 일단 난민 받고 나서 생각하자. 그 이상 "난민을 받지 말자"라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용도로 이용될 만한 글은 아니다. 모든 글에는 주장의 레벨,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해보자", "이렇게 하자.", "이렇게 해야만 한다" 등등 그 주장의 상한선(?)이 있다. 그 글은 내가 볼 때는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라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 뭐, 난민 문제에 대해 내가 논할 것은 아니고, 내가 보게 되는 건 이런 거다. 이제까지 00혐오로 묶어서 비난의 칼을 서슴지 않고 휘둘러오시던 분들이, 자기들이 '난민혐오'라고 공격받으니까 급격히 방어적으로 전환하는 거.

(3) 자신들에게 유리한 문제는 최대한 단순하게 보시던 분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공격이 들어오니 문제를 최대한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 상상해보라. 그 동안 "니들 다 여혐이야"라는 주장 아래 황당한 소리도 용인하다가, 갑자기 "니들 난민혐오하니?"라고 공격받으니 "난민혐오가 아니라 복잡한 맥락이 있어!"라고 항변하는 모습을. 그 이중성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 뻔뻔함.

(4) 예전부터 느끼는 것이 있다. 어떤 정치적 주장이든 책임이란 게 수반된다. 말이든 글이든, 주변에 정치적 주장으로써 영향을 행사하려 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 역시 감수해야 한다. 이 책임이란 게 별 게 아니다. 일관성은 가지라는거지. 그리고 욕처먹을 건 감수하라는 말이지. 입장을 뒤집을거라면 자신의 주장이 그 동안 잘못됐음을 시인을 하든지, 적어도 반성이라도 하라는거고.

(5) 그런데 멍청한 소리를 해서 멍청하다고 욕을 하니, 이젠 그 욕이 듣기가 싫으신 모양이다. 자신들은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는거란다. 이해를 해달란다. 그래, 뭐 이해해줄 수는 있다. 근데 딱 거기까지다. 이해해준다고 해서 니가 욕을 처먹을 이유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난민 받기는 싫은데, 난민혐오라고 욕처먹기는 싫지. 하고 싶은 건 있는데, 거기에 책임을 지기는 싫지. 암. 그게 인간이지. 근데 니가 '정치적 주장'을 할거면, 그걸 통해서 타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으면 욕처먹을 책임도 같이 가져가세요. 그래야 인지상정 아니겠어요?

(6) 터프하신 분들은 생각도 터프하신 모양이다. 그래, 터프하니까 파시즘과 결합한거겠지. 얼마나 간단한 공식인가. 파시즘이란 게 증오와 공포를 동원해서 탄생한 이들이 아닌가. "공포를 이해하라"고? 뭐, 이해하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고 또 이해해야 하는 일이지. 근데 난민을 받지 말자는 주장을 정당화해주는 건 아니잖아? 감정에 호소해서 해결될거면 뭐하러 정치이론을 붙들고 힘겹게 담론투쟁을 하나?

(7) 이런 것도 있다. 뭐 대단하고 엄청난 이유가 있어서 그치들이 난민을 받지 말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난민이 싫은 거 뿐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하고, 지저분하고, 못 사는 동네에서 온 사람들이라 싫은 거 뿐이다. 흔하디 흔한 빈곤혐오. 가난하고, 못 살고, (서구식 교육 혹은 중산층 이상이 향유 가능한) 교육 못 받은 이들은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생각. '후지고' '구리고' '세련되지 못하고' 그래서 기피하고 배제하려는 욕망. 또 이렇게 말하면 '빈곤혐오가 아니구 어쩌구' 그럴테지. 자신들은 아니라고 할테지. 아니, "지저분하고 후지고 구린 거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당연한 거 아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 쯤 되면 나도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니까 고학력 중산층 수도권에서나 수혜받는 이론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겠지.

(8) 극도의 정의감으로 무장한 이들이 얼마나 쉽게 파시즘에 현혹되는지 너무나 잘 목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묘한 기분이 든다. 보아하니 이들이 이젠 나름 주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데, 정의감으로 무장한 이들이 오히려 세상을 더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적절한 예시사례 아닐까.

(9) "''멍청하고 무식한 혐오쟁이들아 공부나 좀 해라!'라고 소리칠 문제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시는 분께서는 정작 이제까지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싶었는데. 좀 박하게 들릴진 모르지만, 난 어쨌든 '설득'의 문제는 정치적 행동에 있어 꽤 중요한 지점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뜬금포이긴 한데)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옳음의 전선을 긋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정규분포로 구성돼 있고, 정치전략에서 중도파를 흡수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보통 사람들의 도덕적 판단력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믿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전제이기도 하다). 보통사람들을 개돼지로 보고 "공부 좀 해라 무식한 혐오종자들아"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에게 똑같은 공격이 돌아오니 당황해하며 "그렇게 하는 건 좋지 않아"라고 항변하는 모습을 보니. 낄낄.

(10) 정치는 곧 책임의 문제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말과 행동을 제약하는 가장 큰 명제는 '책임'이었다. 글을 쓰지 않는 것도, 잘 쓸 수가 없게 된 것도, 책임의 문제에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 일상 속에서 책임을 다하느냐, 라고 말한다면 그건 또 부족하기도 하고. 뿐만 아니라 정치는 능력의 문제도 포함한다. 얼마 전 광역단체장 후보에 여성이 왜 없냐는 난리를 본 적이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가산점을 그렇게 받고도 선출되지 못했다면 후보들의 자질 역시 의심해봐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뭐 지방정치라는 게 온갖 권모술수들이 난무하는 곳인지라 100% 능력의 문제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아무런 능력도 자질도 검증이 안된 후보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후보로 내세우는 것은 도리어 재앙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뭐 이건 어차피 지나간 떡밥이니.

(11) 페이스북에서 가상의 인물로 의심받던 최지혜 계정이 탄로난 모양이다. 뭐 그것까진 그러려니 하는데, 내 눈길을 멈춘 댓글이 있었다. "넷카마조차 페미니즘 이슈로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데 당신들은 한심하게 뭐했냐"라는 게 주요한 요지인데, 글쎼, 내가 보기엔 이 주장이야말로 최지혜 계정이 얼마나 포퓰리즘적인지 대변해주는 게 없지 않나, 싶다. 대중들 지지 받으면 그만인가? 내가 보기엔 1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건 대항담론을 내놓지 못한 이들이 아니라 최지혜처럼 무책임한 염세주의적 주장을 방기해오고 오히려 동조했던 이들이라 보는데. 내 사견으론 최지혜 사건에서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그가 자신의 주장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정치적 주장을 설파한다는 데 있지 않나 생각한다. 덩달아 최지혜 계정이 크도록 도움을 주고 방관했던 이들 역시 책임을 졌...으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테고. 여하간 그는 글쓰기를 중단하고 잠적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최소한 세계관의 흔들림을 경험한 이들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솔직히 이젠 화를 낼 힘도 없지만, 내가 그를 보며 가장 화가 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그렇게 세상을 비웃고 냉소하며 "야, 세상은 썩었어. 내 말 좀 들어봐."라면서 팔로워를 수천씩 끌어모았으면, 그에 합당한 책임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12) 바로 이렇기 때문에 SNS가 '담론공간'으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팔로워 수천씩 있어도, 그에게 부여된 것은 단지 '책임감'의 문제일 뿐이지 실제로 어떤 책임도 부여하기 어렵다. 정치인들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골로 가기라도 하지, 인터넷 상에서 나름 스피커라 불리는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무슨 책임을 지나? 도의적 책임감이라도 느끼면 다행일테다. 책임이 없으니, 당연히 강하고 센 말을 내뱉어내고 속칭 '사이다'를 쏟아내면서 사람들 끌어모으는거지. 그러다 파시즘 되는거다. 파시즘이 어디 멀리에 있나.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방법은 단순하다. 둘로 나눠버리면 된다. 이분법적 세계 안에서는 적과 아군 밖에는 없다. 그러면 선택지는 두 가지겠지. 똑같은 전략에 의해 궤멸당하거나, 자신들이 세상을 장악하거나.

(13) 난 그래서 여론정치를 극도로 싫어한다. 여론의 뜻? 대중은 얼마든지 휘둘릴 수 있고 때로는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도 있다. 여론정치는 그것을 극대화한다. 검증되지 않고 책임 없는 주장이 난무하고, 거기에서 살아남는 것은 검증되고 현명한 판단에 도움을 주는 건강한 정보가 아니라 일차원적 감정을 자극하고 공포심이나 증오를 부추겨 사람들을 혹세무민하는 데마고그들이다. 책임성이 부여되지 않은 곳에 데마고그들이 활개를 치게 마련이다. 좀 엿같은 인간 있으면 팔로워 이용해서 좀 조리도 돌려주고, 그러다가 잘못된 게 탄로나면 그냥 입 싹 닫고 몇 주, 몇 개월 쯤 잠수타다 슬그머니 복귀하면 되고. 귀찮게 구는 인간들 있으면 차단 좀 먹이면 되고. 얼마나 편해.

(14) 그래도 조금은 더 나아지겠지, 라고 믿어야지. 그 작은 희망을 붙들고 있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 그런 거겠지. 다들 잘 해나가겠지.

  1. Favicon of http://hongchanpark.tistory.com Frederick. 2018.06.25 01:41 신고

    술이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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