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말 그대로 조금 '버거운 날'이었다.
왜, 그런 날 있잖아. 내가 책임져야만 하는 삶의 무게가 날 무지막지하게 짓누르는 것 같고, 짓눌리다 못해 생각조차 하기 싫고, 그렇게 회피하다가 결국 무력해지고, 무력해지다가 못해 내 자신이 너무나 쪼그라들어 보이고, 삶이라는 이 망망대해 속에서 그저 표류하는 듯한 막막함만을 껴안은 채 그럼에도 어쨌든 한두발자국씩이라도 내딛어야 하는 그런 날들.
어느 순간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고 느낀 게,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불현듯, 무의식중에 느끼게 되면 나도 모르게 회피해버리는 아주 나쁜 버릇이 생겨버린 것 같다. 언제까지고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 나는 당장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서 도망가게 되는건지. 사실 막상 부딪혀보면 별 거 아닌 일들이 열에 아홉인데도 말이다.
살면서 많은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말만큼 쉽지는 않다. 내 아주 큰 단점 중 하나는 정말 쓸데없는 기억력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아, 이렇게 말하면 재수 없으려나. 이게 공부에도 적용되면 모르겠는데, 정말 '쓸데없는' 기억력이다. 좀 기분 나쁘고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은 서랍장 한 구석에 집어처넣어 두고 언제 찾을지도 모르는 저 구석탱이에 처박아둬야 할텐데, 그런 기억들은 아주 짜증나게도 내 눈 앞에 너무나 정돈이 잘 되어있는 나머지 디테일이 살아 있다. 좋은 기억도 좀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리고 어느 순간 그렇게 정돈된 기억이 너무너무 눈에 밟힐 때가 있다. 당장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어도, 당장 지나간 일일 뿐이더라도, 그냥 그 기억 자체가 머릿 속에 오래 머무른다. 정말, 아주 오래 머무른다. 어느 정도냐면 저녁 여덟시 즈음해서 갑자기 떠오르면 새벽 다섯시는 되어야 겨우 사라진다. 그것도 내가 의도적으로 끌 수 있는 게 아니라 체력이 고갈될대로 고갈되어버리면 그렇다. 아, 이럴 땐 소주를 마셔야 하는데. 근데 그러기엔 내일 출근을 해야 하잖아. 술 먹고 취해서 자버리면 다음 날이 힘들단 말이야.
아무튼, 오늘은 좀 버거운 날이었다. 오랜만이다, 이런 기분은. 그럭저럭 잘 버텨내며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무기력에 젖어들었는지, 오늘은 좀 힘들었어. 이런 무기력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면 싸우기라도 할텐데,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나를 좀먹어가다가 발견하곤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 정도에서 발견되어서.
요즘도 혼자 술을 마시면 빨간 것만 마신다. 소주 안 좋아하는데. 주말 내내 구토를 했고, 위액만 잔뜩 토하다가 식도가 상한건지 시뻘건 것(?)도 조금 섞여나왔다. 사실 그게 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몇번 토하면 낫겠지, 하고 있다가 목이 말라 콜라를 마셨는데 아마 콜라가 섞여나온거겠지. 내가 색깔 구분을 잘 못할 정도로 허약해졌던게고.
병원에선 당분간 자극적인 건 먹지 말라고 했다. 뭐야, 그건 또 어떻게 하는거야. 며칠 된장국 같은 것만 먹으면 되나. 된장국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겠다. 원래 의사선생님 말은 어디 부러졌을 때 빼곤 잘 안 듣는데 이번 말은 좀 들어야겠다 싶어.
사진은 친구가 알탕을 먹자고 해서 데려간 곳이 있었는데, 바로 옆에 기괴한 건물이 있었다. 간판은 '페인트'인데 문에 달린 건 '옷수선'이다. 뭔지 모르게 조금은 뭉클해지는 광경이라 찍어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