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2월 경에 쓴 글이다.


천관율, 정한울. <20대 남자: '남성 마이너리티' 자의식의 탄생>

 

천관율 기자와 정한울 박사가 <시사IN>에서 기획시리즈로 연재했던 <20 남자> 책으로 나와 사서 읽어보았다. 인터넷 기사 지면으로만 읽었을 때에는 시리즈가 연재되던 와중이라 새로운 연재분량이 나올 때마다 챙겨보질 못하고 드문드문 읽었는데, 책으로 나왔다길래 사서 읽었다.

 

책의 구성은 무척 알차다. 꼼꼼하게 분석한 기사 본문 외에도,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화두가 만한 꼭지가 무엇이 있을지, 어떤 점을 생각해볼 만할지 후속편들 역시 탄탄하게 준비돼 있다. A5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로, 240페이지쯤 되는 책은 208여개 문항에 대한 세세한 통계자료와 그에 대한 분석들이 꼼꼼하게 담겨 있다. 전체적인 글의 흐름은 분석 기사라기보다는 하나의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을 담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좋았다.

 

기획시리즈가 좋은 기획이었다는 것은, 기사들이 낳은 수많은 논란들로 증명된다. 좋은 기사일수록 사회에 화두를 던지고, 숙의를 이끈다. 내가 페이스북을 통해 보았던 기사 시리즈는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다른 기사들과는 달리 독자들의 사려 깊은 비판적 코멘트가 많이 달려 있었다. 천관율 기자의 데이터 저널리즘이 크게 빛을 발한 책이라고 감히 평가할 있겠다. 천관율 기자 자신도 반증 가능하게 틀리고자노력했다고 한다.

 

좋은 기자는 좋은 연구자이기도 하다. 천관율 기자의 저널리즘은 모든 기자들이 본받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같이 문항을 짜고 조사를 진행한 정한울 박사 역시 많은 노고가 있으셨을 것이다. 박사님에 대한 나의 번째 기억은 지난 2016 하반기, <선거와 정당> 수업에서 읽었던 세대론 논문(정한울, 2012. 세대 투표율 분석을 통해 2012 대선 예측, EAI동아시아연구원)이었다. 이제 데이터 분석에 입문하기 시작했던 학부 3학년 꼬꼬마가 무엇을 알았겠는가만, 발표의 꼭지로 삼았던 논문이었던 만큼 기억에 선명하다. 멋진 기사들을 써내는데 도움을 아끼지 않으신 같다.

다음은 책의 내용에 대한 간략한 요약이다.

 

25.9% 의미

연구는 우선 ‘20 남자 현상 실제로 있는 것인지 추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을 +2점부터 -2점까지 여섯 개의 문항을 나열해놓고 동의의 정도를 물었다. +12점이면 페미니즘 친화형(혹은 급진 페미니스트?), -12점이면 강한 반페미니즘 집단으로 측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측정해본 결과, -12점을 반페미니즘 집단으로 가혹하게 기준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25.9%라는 높은 수치가 나왔다. 정도의 규모의 집단이면 주변에서 흔하게 동료를 찾을 있는, “재생산이 가능한수치의 집단이자, ‘정체성 집단이라고 불러도 크기다. 간단히 말해, 이들은 잠재적으로 다수파를 형성할 수도 있는 여지를 안고 있는 집단으로 간주된다. 기자는 4 1명이라는 수치 역시 과소평가된 것이라고 말한다.

 

25.9%라는 수치는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집단은 아닐 것이다. 시중에는 이들 반페미니즘 집단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었으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한 자료가 없었고, 다만 그들이 나타난 이유에 대한 가지 가설들만이 존재했다. 대표적인 가설들은 다음과 같다:

 

(1) (비합리적인 여성 우대정책 )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20 남성들이 보수화된 것이다.

(2) 공정성에 대해 더욱 민감한 세대이기 때문에, 적극적 우대조치 등을 부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3) 20 여자들이 극단적 페미니스트로 변했기 때문에 반작용으로 안티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것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안티페미니즘 담론들은 대체로 워마드를 주축으로 극단주의적 발언들과 여파에 초점을 두고 있는 같다. 이런 담론에 따르면, 대체로 페미니즘은 (1) 보편적 인권사상이 아닌, 여성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적인 사상이고 (2) 여성혐오를 이유로 남성에 대한 조롱을 일삼는 패륜집단이며 (3) 이들에 기대어 지지율을 편취하는 정부는 나쁜 정부로 이해된다. 청와대에 올라온 여성부 폐지 청원이 순식간에 10만명을 넘긴 것으로 미루어 , 안티페미니즘 담론이 가진 힘은 제법 것으로 짐작된다.

 

젠더와 권력

25.9% 인식하는 세계관 속에서 남성은 역차별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차별당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현재 사회는 남성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라 남성이 약자인 사회다. 68.7% 20 남성들은남성 차별문제가 심각하다 응답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남성이 차별 받는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는가.

 

취업, 승진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하다고 알려진 영역에서조차 20 남자들은 공정하다라는 인식이 우세를 이뤘다. 이들은 교육 제도에서도 남녀 간에 공정한 편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집행 영역으로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성에게 불리하다는 응답이 높아진다. 정부의 양성 평등 정책도 매우 잘못하고 있다라는 응답이 높게 잡힌다.

 

천관율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권력의 문제다. 20대 남자는 여성에게 화가 나 있다기보다는 권력 구조에 화가 나 있다.”(p.37)

 

하나의 가설, “20 남성이 보수화되었기 때문이다라는 가설 역시 조사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20 남성의 보수화의 징후는 전혀 없었다. 복지와 성장, 시장의 개방과 보호,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한 태도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특별히 보수화라고 발견될 만한 응답은 나타나지 않았다. 20 남자의 응답은 젠더 권력 만날 차이를 드러낸다. 이것이 통계가 보여주는 20 남자 현상이다.

 

길게 인용할 필요가 있는 천관율 기자의 다음 대목은 음미해볼만 하다:

이제 우리는 겨우 반환점을 돌았다.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이 문제의 답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문제 그 자체다. 기성세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런 독특한 정체성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남성이 실제로 약자가 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저 허위의식인가? 만약 남성이 실제로 약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재능과 노력에서 여성에게 뒤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부당한 권력이 작동해서인가? 만약 허위의식에 더 가깝다면, 그런 허위의식은 왜, 어떤 경로로 이토록 공고하게 형성되었나? 젠더 권력 문제를 넘어서는 이 문제의 기원이 존재할까?(pp.56-58)

 

‘맥락이 제거된 공정’

경쟁 공정 20 남자 현상을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키워드다. 기자는 본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문제처럼 보이는 것들이 알고 보면 사회구조와 환경의 영향일 수 있다. 지능, 학습 능력, 사회성 등 명백히 타고나는 것으로 보이는 능력들조차 그렇다. 그런 맥락을 무시하고 웬만한 귀인을 다 내부로 간주해버리는 건 쉽고 편하다.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고 멍청해서 그렇다’라고 간주하는 데는 섬세함이 필요 없다. 공정성이라는 단일 잣대만 살아남으면 이 경계선이 유난히 가혹해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납작한 공정, ‘맥락이 제거된 공정’을 마주한다. 맥락도 구조도 증발한 채, 사실의 조각 몇 개가 ‘팩트 폭행’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온라인 공간에서 끊임없이 복제된다. 그래서 팩트 폭행은 우리 시대를 상징할 만한 유행어다. 이 말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맥락이 제거된 공정’의 시대를 증언한다(p.119).

 

조사에 따르면 남성이나 여성이나 경쟁과 공정에 관해 비슷한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20 남성이라고 해서 특별히 공정성에 민감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공정 자체만 유일한 잣대로 기능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정성 이외에도 개인이 이룬 성취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지만, 이들에게는 공정이 유일한 잣대로 작용한다. 이런 점에서 이들에게 취업 여성할당정책은 공정성을 해치는 대표적인나쁜정책이다.

 

천관율 기자는 조사가탐색적인 작업이었으며, “반증 가능하게 틀리려고 노력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다시 한번 천관율 기자의 문장을 인용한다:

이 조사는 가설부터 만들어나가는 탐색적인 조사였다. 여기서 제안된 이야기는 한 차례 조사에서 추려낸 가능성의 집합일 뿐이다. 가설을 검증하려면 더 정교하고 목표를 좁힌 설문지, 직접 인터뷰 등 다른 방식의 접근 방법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긴 이야기는, 아마도 여러 군데가 틀렸다고 결론날 것이다. 탐색적 조사에서 뽑아낸 가능성의 이야기가 그대로 정답인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생산적으로, 반증 가능하게 틀리려고 노력했다. 이제 무엇이 틀린 이야기인지를 검증하기가 이전보다 쉬워졌다(p.135).

 

여담들

조사 말미에 정한울 박사는 20 여성을 조사하고 싶었다고 한다. 간략한 조사 결과에서 드러나는 가지 사실은 20 여성들 사이에서 유난히 정치적 자신감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영향일 수도 있고, 다른 요인일 수도 있다. 재미있는 대목이다.

 

조사 집단에서 급진적 페미니스트 집단은 유의미하게 잡히지 않은 것이 흥미롭게 보였다. 최근 변희수 하사를 비롯하여 트랜스젠더 문제가 한창 가시화되고 있는데, 여기에 소위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논의를 크게 주도(?)하고 있는 형국인 하다. 이들은 유의미한 집단이 아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규모는 작지만 이들의 마이크가 과대대표되어 들리는 것일까?

 

최근 트위터 등지에서 발견되는 TERF 유심히 보다 보면 연령대가 계속 눈에 밟힌다. 간혹 30대도 보이지만 대체로 많이 보이는 연령대는 10대와 20 초중반이다. 이번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과 관련하여 신입생 단톡방이 구성되었고, 그곳에서 트랜스젠더를 조롱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링크). 아마 10 시절부터 형성되었던 정체성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반대하는 연서명에는 1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10대까지 조사집단을 확장해본다면 규모는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