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의 물결 일으킨 더 깊은 뿌리
한국의 급작스러운 극우화 물결은 완전히 수수께끼다. 당신이 이 문제를 ‘예견된 위기’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이 글은 그 생각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이 정도의 극우화 물결은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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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율이 시사IN에 낸 이 기사의 핵심은 ‘보수 우위 지수’를 나타내는 이 그래프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프는 1을 기준으로 1 이상이면 보수 우위, 1 미만이면 진보 우위를 나타낸다. 그래프는 명백히 우하향 선을 그린다.
천관율의 주장과 해석은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한국에서 정치 갈등의 핵심은 진보-보수 간 이념적 갈등이 아니라 구조적 우위를 획득하기 위한 ‘다수파 교체’의 싸움이다.
(2) 한국의 보수파는 ‘구조적 우위’로서 다수파의 지위를 누려왔다.
(3) 이런 구조 속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등장은 민주화의 결과물로서 공정한 선거로 치뤄진 것이 아니라 진보파가 비열하게 ‘선거를 도둑질한’ 해프닝이다. 그러나 보수 우위의 구조는 흔들리지 않았다.
(4) 박근혜 탄핵 이후 한국의 보수는 지속적으로 하향세를 겪었고, 이제는 ‘구조적 소수파’가 되었다.
(5) 극우-파시스트의 등장은 이런 ‘구조적 소수파’로 전환된 보수집단이 체제를 수용할 것인지 체제를 바꿀 것인지를 두고 벌이는 내부 노선 투쟁의 결과물로 이해해야 한다.
(6) 그런 점에서 한국의 극우는 세계적인 극우화 경향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다르다: ①'지위 하락의 공포'에 기반한 점은 비슷하지만 ②한국의 극우는 두려움의 대상이 뚜렷하지 않다. 반중 정서는 물론, ‘한국 사회 주류가 화교’라는 황당한 음모론을 극우들이 신봉하는 이유는 뚜렷한 두려움/적대감의 대상을 정의할 수 없는 무능력에서 오는 것이다.
(7) 신념형 극우파는 보수 정당의 노선을 극우화하고 있다. “계엄을 반성하지 않고도 집권이 가능한 정당”이 앞으로도 한동안 존재할 것이다.
(8)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극우들을 한국의 보수파 내에서도 소수파로서 고립시켜야 한다.
천관율씨의 해석은 인상적이다. 나는 이 분석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해 가장 정합적으로 설명하는 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천관율의 설명틀에서는 기존의 틀로 설명할 수 없는 몇 가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극우의 정치세력화는 보통 ‘지위 하락의 공포’라는 심리적 기제로 설명되거나 혹은 ‘정치의 양극화’, ‘감정의 양극화’ 정도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런 설명틀로는 기존의 주류 정당이었던 국민의힘마저 왜 극우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국민의힘은 이미 제도권 민주주의 안에서 안정적인 수권 능력을 확보한 정당이다. 비록 박근혜 탄핵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겪었지만,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5년만에 정권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달리 말하면 국민의힘은 이미 민주주의라는 게임에 적응한 집단이다. 이런 집단이 왜 탄핵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에 앞장서는가. 정권을 빼앗기는 것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은 있을 수 있어도, 민주정을 뒤집는 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것은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천관율의 설명틀에서 한국의 보수에게 ‘민주주의’란 보수 우위의 구도가 유지될 때에만 유효한 것이다. 즉, 민주주의가 가지는 게임의 규칙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때에만 민주주의를 선택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다수파에서 밀려난다면, 민주주의는 기꺼이 폐기한다. 이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갈등을 규정하는 본질적 틀이자 한국 보수의 가치관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보수에 대한 이해를 곁들이는 것이 중요하겠다. 천관율의 분석이 타당하다면 보수에 대한 다음의 이해 또한 곁들여볼 수 있겠다. 한국의 ‘보수’ 입장에서 한국의 체제에 대한 이해는, 적어도 나의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다. 아래 주장과 해석의 핵심은 한국의 보수 세력이 87년 민주화 체제를 수용할 의지가 없는 집단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질문① 보수파의 핵심 세력은 87년 체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한국의 보수파에게 87년 민주화는 곧 내란 체제의 수립이다. 왜? 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열렸으니까. 그들에게 민주당은 집권해서는 안되는 정당이다. 그러나 그들이 집권할 가능성이 열렸으므로, 87년 민주화는 상시적으로 내란이 가능한 체제로 이해된다. (따라서 보수파는 반드시 선거에서 이겨야만 한다. 패배는 받아들일 수 없다.)
현재 시점에서 한국 보수파의 핵심 세력은 전광훈을 비롯한 극우 개신교 세력이라고 본다. 국민의힘은 계속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강한 메시지는 내지 못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광장을 ‘손절’하게 되면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다음 선거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탄핵 반대를 이끄는 세력은 명백하게 극우세력이고, 국민의힘은 이들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나중에 손절하면 된다’라는 안일한 생각이라면, 국민의힘은 결국 광장의 극우들에게 끌려다니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질문②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집권하면 안되는가?
두 가지로 이해해야 한다. 첫번째는 명분. 우파에게 민주당은 반국가 간첩 세력이다. 보수파의 세계관에서 민주당의 집권은 곧 나라를 북한에 팔아먹는 것과 같으므로, 민주당의 집권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일이다. 최근에는 그 대상이 중국으로 바뀌었다. 북한은 더 이상 한국의 유의미한 적수가 되지 못하고 효과성 또한 떨어지기 때문에 '중국'을 급하게 소환했을 뿐이다. 그들에겐 ‘적대’의 대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두번째는 대내적 위기. 민주당의 집권은 곧 선거에서의 패배이고, 선거에서의 패배는 내부적 분열을 불러온다. 보수파는 지금껏 강고한 행정권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엘리트 관료집단, 검경과 판사를 위시한 사법권력을 중심으로 보수 우위 체제를 지켜왔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는 교육 시스템 안에서 특정 몇몇 학교와 학과를 중심으로 합법적으로 ‘해킹’하며 유지됐다. 그들은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서 적극적인 보상과 처벌을 통해 소위 ‘카르텔’을 유지해온 것이다. 민주당은 지속적으로 이러한 집단을 해체하기 위해 노력했다. 따라서 민주당의 집권은 우파 엘리트 입장에서는 선거에서의 패배로 내부적 분열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집단적 이해관계를 해체하려는 시도에 노출되는 것에 가깝다.
다시 말해, 그들 자신의 집단적 존속과 연대를 위해서라도 민주당의 집권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일이 된다.
질문③ 김대중-노무현을 거쳤지만 그 정권을 용인한 이유는 무엇인가?
최소한 그 시기에 보수파의 구조적 우위는 유지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기본적으로 보수파의 헛발질과 함께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진보파의 거대한 사기극으로 인해 탄생한 ‘사고’였다. 이런 맥락에서 노무현에 대한 탄핵은 진보파의 ‘도둑질’을 강제로 멈추려던 시도였고, 이명박 정권 이후 노무현에 대한 정치 보복은 진보파의 유산을 잘라냄으로써 집권 가능성을 억제하려던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87년 민주화를 거치며 군부독재를 지탱하면 핵심 엘리트 세력은 처벌받지 않았고, 이들 집단은 군부 독재와 결탁하며 이익을 누렸던 집단이다. 따라서 이들은 애시당초 민주주의를 수용할 의지가 없었다. 민주적 규범 아래에선 집단의 생존이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화 시기 이들에게 주어진 대외적 조건은 독재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들 자신의 이익은 독재에 복무하는 것이 훨씬 이익 합리적이나, 현실적 조건은 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그들이 가진 이익마저 송두리째 날릴 수 있는 위기였다. 따라서 이들은 ‘제한적인’ 민주화를 수용하게 된다. 최장집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서 87년 민주화를 ‘협약에 의한 민주화’로 개념화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협약에 의한 민주화] 최장집 교수는 자신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87년 민주화를 ‘협약에 의한 민주화’로 정의한다. 여기서 ‘협약’이란 민주 진영의 요구를 ‘직선제 개헌’이라는 우물 안에 가두는 대신 기존의 지배 세력을 온존하는 방향으로 ‘협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국의 민주화는 구 지배세력을 청산하고 민주적 규범을 정초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지배세력은 유지한 채 ‘절차적 민주주의’만을 합의한 결과물이고, 그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보수적’으로 민주화되었다고 진단한다.
보수파 입장에서 자신들의 패배를 다른 수단을 통해 만회하려는 시도는 미국 등 주요 우방국에게 민주주의에 반하는 집단이라는 시그널을 줄 수 있다. 87년 민주화에 미국의 압박이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고려하면, 선거에서의 패배를 수용하는 것이 대외적으로나마 민주주의를 수용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길이다.
요컨대, 패배는 용인할 수 없으나 최소한 ‘보수 우위’의 구도가 유지되는 한 합법적으로 정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으므로 잠시 용인한 것에 가깝다.
냉소를 가득 감아 말하자면, 우파에게 민주당이란 일종의 ‘키링’ 같은 것이다. 그들에게 민주당이란 ‘한국’이라는 국가가 전혀 민주적 가치를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외적으로 민주주의임을 표방하게 해주는 존재로서 남아있어야 한다. 영구히 집권 못하게 만들고 우파들이 정권을 독식하되, 대외적으로는 ‘야당과 경쟁도 하는’ 구도를 만듦으로써 대외적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위장하게끔 하는 도구일 따름이다. 바꿔 말하면 민주당은 한국의 우파 엘리트 집단에게는 애초에 ‘정치적 경쟁’의 대상조차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 도구 이상을 넘어서 정권을 가져간다는 것은 우파에겐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질문④ 보수파는 ‘구조적 소수파’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대안을 가져왔는가?
구조적 소수파에서 탈출하기 위한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를 뒤집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길에서는 기존 군부독재로부터 기원하는 냉전보수와 완전히 결별하고 새로운 보수적 규범을 창출함으로써 다음 선거에서의 다수파 회복을 노리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표 계산만을 통해 이뤄지는 정치공학과는 다르다. 민주적 규범을 수용하면서 기존 보수와는 결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보수’의 이정표를 제시해야 하는 난관이 있다. 두번째는 민주주의를 뒤집는 것이다. 민주당과 시민사회가 기반하고 있는 인식과 규범 자체를 뒤집고 흔듦으로써, 그들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흔드는 것이다. 보수파는 무엇을 선택했나? 현재 시점에서 그들은 후자를 선택했다고 봐야 한다.
후자를 선택함에 있어 그들이 들고 나온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뉴라이트를 동원하여 기존의 역사적 인식, 민주적 규범과 질서를 형성하는 인식적 기반을 훼손하는 것, ⓑ부정선거 음모론을 적극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확산시키거나 적어도 그런 세력과 연합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 자체를 훼손하는 것.
뉴라이트의 등장은 민주당으로부터 정권 탈환 이후 ‘구조적 다수파’로서의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등장한 운동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정권 탈환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에서 뉴라이트가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민주적 규범과 민주주의적 질서, 해석의 틀 안에서 기존 군부독재 세력은 존립의 정당성을 잃는다. 뉴라이트가 벌이는 소위 ‘역사전쟁’의 핵심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명백한 ‘독재’ 세력에 대한 정당화 및 미화 작업과 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격하하고 조롱하는 것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민주적 규범과 질서에 대한 해석 자체를 뒤틀고 훼손시켜야만 존립 가능한 세력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5.18에 대한 지속적인 훼손 시도는 5.18이 상징하는 민주적 질서, 민주적 규범에 대한 훼손 시도라고 해석해야 한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횡행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민주당을 비롯해 ‘구조적 소수파’로의 전락이 명확해진 2020년 총선 이후 ‘부정선거 음모론’은 민경욱 등을 중심으로 대두됐다. 민주적 규범 아래에서 생존이 어렵다는 가설이 타당하다면 이들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전면에 들고 나온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민주당이 다수파인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다수파를 획득하게 된 과정, 즉 선거 자체의 정당성을 뒤흔들어야 한다. 물론 민경욱의 시도는 실패했고, 당시에도 부정선거 음모론은 보수파 내에서도 효과가 없었다. 한국의 선거제도는 시스템적으로 해킹하기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다, 선거의 정당성을 뒤흔들 경우 자신들의 정당성까지 훼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선거 음모론은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꾸준히 확산되었고 국민의힘 또한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이미 구조적 소수파로 기울어버린 상황에서 최대한의 결집을 이끌어낼 수 있는 폭발적 에너지가 극우 운동에 잠재돼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이미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정치적 생존을 위해 극우파와 느슨한 연합을 형성하는 것이 국민의힘에게는 유리했을 것이다. 여기서 ‘느슨한 연합’이란 이들의 폭력성과 반지성주의, 음모론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반대하면서 적극적으로 제지하지는 않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힘이 이미 극우집단과 연합을 형성했다는 것은 서부지법 폭동에 대한 국민의힘의 메시지에서 드러난다(경찰서장에 폭동 연행자 “잘 부탁”…그런 윤상현 괜찮다는 국힘(한겨레, 25.01.22.)). 레비츠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민의힘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로 행세하면서 민주주의의 가드레일 역할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나마 국민의힘은 내란 사태 초반에는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상욱 의원 같은 경우 적극적으로 민주정을 수호하려는 의지가 드러나는 만큼 내부에서도 분열이 있는 듯 하다. 문제는 윤석열이다. 구조적 소수파를 극복하기 위해 윤석열이 선택한 것은 극우 집단과의 적극적인 결탁이었다.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극우 집단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윤석열은 임기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극우집단과 연합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났다.
첫째, 윤석열은 임기 초반부터 야당을 적극적으로 ‘반국가세력’으로 지칭했다. 윤석열의 담화문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윤석열은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 등 이전의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공격적이고 거친 언어를 사용하며 야당을 적대하는 언어를 사용했다. 비상계엄 이후 그가 사용하는 논리들 대부분이 극우유튜버의 것을 차용했다는 여러 분석들은 그의 세계관이 적대적 극우에 기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윤석열은 적극적으로 극우인사들을 정부 요직에 기용했다. 극단적 막말을 일삼았던 극우유튜버 김채환을 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임명했고, 그는 인재개발원장으로 임명된 직후부터 윤석열을 적극적으로 두둔하는 영상을 인재개발원 공식 채널에 올리기 시작했다([단독] 인재개발원장 "국민은 때때로 옳지 않아‥채 상병·디올 파우치는 하찮은 먼지"(MBC, 24.09.20.)). 또한 극우유튜버 안정권의 누나를 대통령실 7급 공무원으로 채용한 사실 또한 밝혀졌으며, 극우유튜버와 가까운 인물들이 대거 ‘벼슬’을 받았다는 보도 역시 있었다(극우 유튜버들에게 '벼슬' 준 윤석열 정부(굿모닝충청, 23.07.18.)). 모든 것이 윤석열이 극우 집단과 적극적으로 결탁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어떤 시도이건 간에 보수파는 ‘구조적 소수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체제를 뒤흔드는 방식을 선택했다.
질문⑤ 한국의 엘리트 집단이 독재 친화적이라면, 민주주의는 폐기될 수도 있는가?
만약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엘리트 계층의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엘리트 계층은 민주주의를 폐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형태는 윤석열의 탄핵을 기각 또는 각하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리스크가 따른다. 온전히 ‘체제’ 관점에서 보자면.
민주주의를 공개적으로 혹은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결정을 내릴 경우 광범한 대중적 저항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시민들은 단순한 불복종 또는 소송 등 ‘부드러운’ 방식의 저항과 함께 광장에서의 집회 등 고강도의 투쟁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서 저항할 것이다. 엘리트 계층은 법을 통치의 도구로 소환하면서, 즉 ‘법치주의’라는 원칙을 스스로 형해화하면서 저항을 분쇄하거나, 더 극단적으로는 군경을 동원한 무력 진압을 시도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윤석열은 계엄을 선포하고 의회와 광장을 무력화하는 친위쿠데타를 ‘다시’ 실행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선택들은 국제적 비난을 불러올 소지가 매우 높으므로 선택하기 어렵다. 만약 엘리트가 국제적 비난조차 감수하고 저항 세력을 철저하게 분쇄하고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다면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오늘날 정치 체제는 여러가지 기준에 의해 평가된다.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대표적 지표로는 Polity 프로젝트, Freedom House, V-Dem, BTI, EIU가 있다. 윤석열의 탄핵을 기각시키는 선택은 이론의 여지 없이, 모든 민주주의 지표에서 한국을 ‘민주주의’의 자리에서 밀어낼 것이다. 한국이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라거나, 민주주의를 언제든 지도자의 망상으로 뒤집을 수 있는 불안정한 체제라는 것이 국제사회로부터 인식된다면 엘리트 계층은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기 어렵다. 미국이 현재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변수이긴 하나, 장기적으로는 결국 ‘민주주의 체제’여야만 엘리트 계층은 생존을 도모할 수 있다.
일부 선생님들께서 우려하는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창환 선생님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동력 자체가 미국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미국이 지금처럼 트럼프 독주 체제로 가고 엘리트 또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이 딱히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를 폐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우려하셨는데, 문제의식은 동감하지만서도 기우에 가깝다고 본다.
탄핵은 무리 없이 인용될 것이다. 탄핵 인용은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를 만든다. 그러나 탄핵 기각은 끝을 모를 수렁으로 우릴 끌고 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엘리트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정말, ‘물리적 생존’까지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충격의 연속인 한국 상황. 한국의 민주적 제도는 어떤 기반 하에 형성된건가?
최근 일련의 사태를 겪기 전까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규범과 이를 체화한 두터운 관료, 시민층이 한국에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계엄에 저항했던 군인과 홍장원 등을 보면서 그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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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해야 하나
이 글의 부제를 ‘민주주의는 일시적 착각이었을까’로 잡은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스스로 포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았다는 것에 잠시 절망했기 때문이다. 극우들은 자신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에게 자유민주주의는 사후적으로 가져오는 명분에 가깝다. 마치 박정희가 유신 헌법을 만들기 위해 친위쿠데타를 벌여놓고 “공산 침략자들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라고 변명한 것처럼 말이다. 민주주의를 중단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민주당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어떤 광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보수파는 명백하게 민주주의를 전복하는 선택을 했다. 그들은 헌재를 뒤흔들고, 서부지법을 테러하며 윤석열의 '법기술'에 편승하여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을 모두 형해화하는 데 앞장섰다. 지금의 보수파는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폐기해야만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들의 정치적 승리는 곧 민주주의의 적극적인 폐기를 의미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한국의 민주주의는 동아시아에서 일궈낸 기적적인 성공 신화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 착각'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시점에 와서 타협이나 화해는 불가능해보인다. 민주정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룰에도 합의하지 않는 집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 한다. 탄핵 인용 이후에는 다들 개미처럼 숨어들 것이다. 탄핵 반대 집회는 마치 없었던 일처럼 되거나, 일부 집단을 중심으로 헌재에 불복하며 적극적인 테러 활동에 나설 수도 있다(이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 국민의힘이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낸 건 그런 의미에서 다행이다).
모두 공개적으로 법정에 세우는 한이 있더라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뒤집을 준비가 된 집단에 대해서는 철퇴 그 이상의 잔혹함이 필요하다고 본다. 때로는 무관용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