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가을께, <흰고개 검은고개>를 알았다. 그 후로 벌써 10년, 아니 12년도 더 흘렀다. 십이간지가 한 바퀴 돌 만큼의 세월을 함께 한 술집이다. 지난 금요일, 이 곳에서 사실상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모임을 가졌다.
가게가 있는 동인천 일대가 이제 재개발 수순으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다른 곳으로 이전하려고 했으나, '이사 비용'만 챙겨줄 뿐이고 나머지 비용은 알아서 감당해야 한다고. 너무나 큰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장님은 가게를 폐업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친구들, 선후배와 함께 만든 작은 단톡방이 있다. 이름은 <역적패당>. 신입생, 선후배를 포함해 들어왔다 나갔다 몇 차례 순환이 있었다가 현재는 7명으로 정착했다. 톡방에 나가 있지만 여전히 연락하고 있는 친구들을 합하면 9~10명 쯤 되는 규모다. 시즌마다 모여서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정보도 공유하고 뭐 그런 모임이다.
나는 <역적패당>과 20대의 전부를 함께 했다. 군 입대부터 전역, 졸업과 취업 준비, 취직과 새로운 출발 등... 새로운 경사나 소식이 있을 때마다 모였고, 그 모임의 장소는 항상 <흰고개 검은고개>였다.



그 옛날에 뭐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술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싸이월드>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아마 노래방이었을 것 같은데, 다 떼어지지 않은 스티커와 "학생 5000원"이라는 가격표를 이 날따라 유심히 봤다.


사장님의 원래 본업은 사진작가라고 들었다. 십 년 넘게 다니다 보니 술 먹다 말고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는데, 사장님이 가진 경험과 식견은, 인천의 학생운동사를 축약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만간, 친구와 함께 사장님의 구술사를 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 말에 폐업이시니, 그전에 연락해서 구술사를 남겨볼 생각이다.


우리가 가게 되면 꼭 앉는 자리가 있다. 무대처럼 살짝 올라온 마루 바닥에 테이블 3개가 있는데, 그중 중앙자리가 우리가 자주 앉는 자리다. 나는 늘 가장자리에 앉았다.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무대 벽면에 붙어있는 시를 좀 더 자주 보게 되는 효과는 있다. 무대 이름은, <흰 노래 검은 소리>인 것 같다. 종종 공연도 했다고. 윤석열이 탄핵되던 날 밤, 사장님은 이곳에 무대를 열었다고 했다. 탄핵안 가결부터 파면까지는 너무 긴 겨울이 있었다.
시는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다. 김지하 시인의 <서울길>이라는 시다. 한동안, 이 시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간다, 울지 마라 간다. 언젠가 떠날 줄은 알았지만, 우리가 이곳과 이별하게 될 줄, 그 누가 상상했겠는가. 에이, 그래도, 설마 그때가 올까, 라며 넘겼지만 세월은 쏜살같이 흘렀다. 간다, 울지 마라, 간다.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며, 마지막에 사장님이 남기신 말씀이 못내 슬펐다. "추억은 추억대로 남겨두어야 한다"라고 하셨던가. 이 시는, <흰고개 검은고개> 그 자체를 나타내는 시로 읽힌다.
<서울길>, 김지하.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

가게 한 편을 장식하고 있는, 학생운동사의 절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은 전혀 구할 수 없는 책들이다. 노동자 대투쟁, 사구체 논쟁, 헤겔철학, 세계철학사, 반제반파쇼 등... 온갖 이론과 논쟁이 불붙으며 각축했던 학생운동 세계의 역사를 압축한 공간이다.
나야 학생운동 세대는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 다만 학생운동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몇몇 유명한 책들의 제목은 기억한다. 책의 서문들은 하나 같이 세상을 바꾸겠노라는 결기와 포부가 넘쳤다. 이젠 빛이 바래버린, 누렇게 변색된 종이 위에 아주 작게 인쇄된 8포인트짜리 글씨들. 왜 그렇게 글씨들을 작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두꺼운 책들이 많다. 하고 싶은 말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낭만'을 언어화할 수 있다면, 바로 이런 공간이 낭만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안주들.
다시는 못 본다는 생각으로 가게에 있는 거의 모든 메뉴를 시켰다. 가격대가 저렴해서 그렇게 많이 나오지도 않았다. 1명이 뒤늦게 합류해서, 1차는 먼저 온 사람들끼리 계산했다. 11만원 쯤 나온 것 같다. 인당 2만원꼴이다.
이 식당의 시그니처는 가장 왼쪽에 있는 제육덮밥이다. 계란말이도 일품이다.


얼큰한 국물을 먹으려고 참치김치찌개도 시켰다. 순두부와 참치가 들어간 얼큰한 찌개다. 워낙 단골이다 보니, 사장님이 종종 서비스를 주시는데, 이번 서비스는 떡라면이었다.
내 미식 경험을 통틀어, 가장 맛있는 라면이었다. 중간에 울음이 날 뻔 했던 것을 참았다. 괜히 울컥했다.

가게를 나오며, 가게 입구에 세워져 있던 글이다. 자세히 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항상 있었던 것은 기억한다. 지난 12년 동안.
언제나 그곳에 있어주길 바랐지만, 이제는 나도 20대를 떠나보낼 때가 된 것일까. 이제 정말, 나의 20대를 추억의 저편으로 고이 접어두어야 할 때라고 느낀다. <흰고개 검은고개> 안에서 웃고 떠들고 울었던 나의 20대는 영원히, 그 자리에 멈춰 있겠지.
사장님이 "추억 속으로 남겨놓자"라고 하신 말씀의 반대편은, "너희들은 새로운 인생의 막을 쓰라"는 의미가 숨어있었다. 늘 우리에게 자신의 인생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경험을 들려주셨던, '우리' 인생의 어른 중 한 분. 단순한 술집이 아닌, 우리의 인생을 기록했던 공간.
먼 미래를 상상해봤다. 언젠가, 내가 자녀가 생기고 그 자리를 지날 적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옛날에 아빠가 스무살 적에 이 자리에 <흰고개 검은 고개>라고 있었단다."라면서. 어쩐지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울 것만 같다.
─2025. 04. 20.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