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최근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이번 조기 대선의 성격에 대한 분명한 규정과 평가가 사라졌다. 마치 윤석열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상황에서 치러지는 ‘정상적인’ 대선처럼 비춰지는 것은 단순한 착각은 아닌 듯하다. 실제로 언론들은 윤석열이 탄핵 심판 중이던 때에도 차기 대권주자가 누구인지 물으며 ‘양자대결’, ‘삼자대결’ 등의 구도를 그려왔다. 2025년 새해를 맞이하는 언론사 신년 특집은 조기 대선에서 누가 이길지를 놓고 가상대결을 벌이는 특집으로 채워졌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통해 내란을 획책했고, 그 행위의 위헌성이 인정되어 파면되었으므로 치러지는 ‘조기 대선’이라는 점은, 소위 ‘양자대결’, ‘삼자대결’이라는 여론조사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 결과 현재, 김문수는 국민의힘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이재명을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다. 이 상황을 뭐라고 평가해야 할까?
이번 대선을 평가하는 기준
우선 이번 대선에 대한 나의 단도직입적인 평가는, 윤석열의 불법·위헌적 비상계엄에 맞서 단결한 시민들에 의해 윤석열이 파면됐고, 윤석열이 망쳐버린 민주주의의 원칙과 규범을 바로 세우기 위한 심판대라는 것이다. 심판의 대상은 당연히 국민의힘이다. 나는 지난 내란의 밤들을 지내면서, 조금 더 솔직한 마음으로는, 어느 순간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목숨조차 부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불쑥불쑥 고개를 들 때가 많았다. 매 순간이 분노를 촉발했고, 마치 우리에게 ‘이래도 폭동 안 일으켜?’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순간들이 정말 많았다. 그러나 시민들이 들었던 것은 죽창이 아닌 응원봉이었다. (부족한 언어능력으로 인해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그 장면들을 감히 찬사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지금 국민의힘이 후보를 내는 것도, 그들이 마치 계엄과 자신들은 아무 관련이 없다는 듯 사기에 가까운 언동을 벌이는 것도, 모두 시민들이 피바람 몰아치는 숙청과 처단 대신 ‘선거’라는 평화적 수단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의 이번 대선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 기준은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를 지킬 의지와 역량이 있느냐는 것이다. 내 기준에서는 다른 그 어떤 요구보다도 민주주의가 우선하고,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며, 사회개혁과 함께 병행해야 하는 목표이다. 민주주의여야만 우리가 경쟁하고 논쟁하고 가능성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민주주의란 개념적으로는 의회와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이고, 실천적으로는 윤석열이 수십번의 거부권과 비상계엄으로 반-의회주의를 선동하며 무너뜨리려 시도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규범들을 복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내란 세력의 최소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내란 세력의 최소화’란 12.3 비상계엄 이후 파면까지 윤석열을 포함한 그의 추종집단들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왜곡하고 망가뜨리려 했는지 분명히 목도한 바, ‘내란 세력’이란 윤석열과 그를 추종하는 파시스트 집단─난 그들을 이제 파시스트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을 공동체로부터 축출하는 것을 말한다.
나의 이런 시각에서는 단호하게, 국민의힘은 결코 대안이 아니고 대안이 되어서도 안 되며, 중장기적으로는 해산과 처벌의 대상이다. 윤석열의 명백한 범죄행위를 보고도 그들은 탄핵 투표에 표결하지 않았으며,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을 끊임없이 조롱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비상계엄 직후 민주당과 연합하여 비상계엄을 해제하고 윤석열 탄핵 투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면, 그 후 윤석열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과 출당, 제명, 빠른 파면을 촉구했더라면, 그리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전광훈, 손현보 이하 부정선거 음모론 집단과 극우세력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긋고 처벌을 시사했더라면,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동등한 정치적 경쟁자로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도리어 민주당은 비상계엄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잡지 못하는 무능한 집단이란 비판에 직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그러지 않았다.
이번 대선이 결코 정상적인 상황에서 치러지는 대선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후보를 냈고, 마치 윤석열이 정상적인 임기를 마친 후 치러지는 정상적인 대선처럼 비춰지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나는 이런 시각들이 크게 세 가지 착각(또는 더욱 멸칭하자면, 사기에 가까운 의도적 축소와 왜곡)에 근거한다고 본다. 세 가지 착각은 다음과 같다: (1) 윤석열 파면으로 내란이 ‘사실상 종료’되었다는 시각, (2) 윤석열이 탈당함으로써 국민의힘과 윤석열이 ‘절연’했다고 보는 시각, (3) 김문수가 최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했으니 윤석열과는 다르다는 주장. 최근 몇 사람과 논쟁해보니 이런 시각들은 김문수 측 진영에서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사용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나하나 따져 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첫번째 착각: 윤석열 파면으로 내란이 ‘사실상 종료’되었다는 착각
가장 먼저 따져볼 것은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이후 윤석열의 내란이 ‘사실상 종료’되었다고 보는 착각이다. 윤석열은 파면되었고, 형사법정으로 넘겨졌으니 이제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따라서 이제 할 일이 없다는─시각이다. 이 시각은 세 가지 잘못된 전제 위에 서있다. (1) 법이 그 자체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집행되리라는 생각, (2) 윤석열의 처벌을 책임지고 있는 집단(검찰, 경찰, 재판부 등)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법을 집행하리라는 기대, (3) ‘윤석열만’ 처벌되면 된다는 ‘의도적 축소’가 그것이다.
가장 먼저, 법은 그 자체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법은 종이 위에 쓰여진 문구다.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이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이다. 법은 마치 그 자체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법은 ‘해석’의 대상일 뿐, 법의 작동은 철저히 인간의 영역이다. 그리고 인간의 영역에는 반드시 인간의 의지가 개입한다. 법은 ‘행위’하지 않는다.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시민들이 목도한 것은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기구들이 일종의 ‘선택’을 행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지닌 권력의 도구를 선택적으로 활용한다는 말이다. 윤석열은 기본적으로 검찰 출신이다. 검찰이 같은 검찰 출신에게 우호적으로 대한다는 것이야 이미 우병우 이래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윤석열을 기소한 검찰의 공소장은 윤석열에게 ‘내란 혐의’를 적시했으나, 공소사실 이외에도 검찰은 조직 차원에서 윤석열에게 우호적이고 유리한 결정을 내릴 여지는 얼마든지 남아있다. 이미 비상계엄 전에도 김건희에 대해 '황제 수사'를 했던 검찰이다. 또, 윤석열의 재판을 담당한 지귀연 판사 재판부 또한 윤석열에게 이례적으로 구속을 ‘시간’으로 계산하여 구속 취소를 해버리는 황당한 일을 행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 내란 사태의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줄곧 비공개 재판까지 고수하는 중이다. 실제 법리적 해석이 어떻건, 일련의 사건들은 검찰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불쏘시개가 되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것은 ‘인간’이다.
윤석열은 여전히 재판이 ‘진행 중’에 있고, 현재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저지른 위헌위법에 대해 적절한 처벌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헌법과 법률이 정상적으로, 공정하게 작동한다면 윤석열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면하지 못한다. 그러나 법률을 담당하는 집단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순간─즉, 윤석열과 그 세력을 여전히 살려두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이 서는 순간─윤석열은 살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지금 상황에서 윤석열이 '공정하고 엄정한 법의 잣대로서' 처벌받을 것이라 기대할 만한 단서들이 별로 없다. 그저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정의롭고 공명감 넘치는 인물들이기를 바라거나 법이 '그 자체로 정의롭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 말고는. 전자는 비현실적이고, 후자는 순진하다.
윤석열이 탄핵 심판 내내 민주주의를 조롱하고 규범을 형해화하면서 동원한 극우집단에 대한 처벌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정녕 윤석열만 처벌하면 이 ‘내란’이 끝나는가? 12월 3일 이후 시민들이 목격한 것은 윤석열이 우리가 그동안 지켜야 한다고 믿어온 규범들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뒤흔들며 오로지 본인의 생존만을 도모하던 장면이었다. 윤석열의 악질적인 선동에 힘입어 그를 추종하는 집단이 거리로 쏟아졌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윤석열이 퍼뜨린 독버섯 같은 주장들을 일삼는 중이다. 지금처럼 SNS가 크지 않았던 시대라면 윤석열만 처벌하는 것으로 어느정도 수습됐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정치인이 생산한 허위정보와 극단적 주장은 이제 SNS를 타고 오랫동안 부유한다. 지금은 ‘적극적 소수’가 ‘소극적 다수’를 왜곡하는 시기이다. 윤석열만 처벌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가 남긴 상처는 깊고 진하다.
두번째 착각: 윤석열이 국민의힘을 탈당했으니 윤석열과 ‘절연’했다는 착각
두번째로 따져볼 것은 윤석열이 국민의힘을 탈당함으로써 국민의힘과 윤석열이 ‘절연’했다는 착각이다. 대선 국면이 심화되면서 윤석열에 대한 출당/제명 요구가 국민의힘 내부적으로 있었던 모양이지만, 김문수는 윤석열의 ‘자진탈당’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 형식이야 어찌 됐건 이제 윤석열은 당과 연관이 없는 사람이니 윤석열이 지고 있던 내란의 원죄를 털어냈다는 시각이다. 의심하건대 아마 이런 시각을 견지하는 것은 최근 이낙연 지지자들로부터 두드러지게 보이는 듯 하다. 아무래도 윤석열의 원죄가 너무 중대하고 크니, 어떻게든 털어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탈당’만으로 윤석열과의 절연이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은 순진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악한 축소와 왜곡에 가깝다고 본다. 더 심하게 말하면, 그건 윤석열과 그 지지세력의 본질을 조잡한 정치공학으로 덮어씌우면서 시민들을 농락하는 것에 가깝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윤석열은 ‘제명’ 또는 ‘출당’된 것이 아니라 자진 ‘탈당’의 형식을 취했다. 이건 윤석열이 더 이상 당과 관련없음을 선전하기 위한 액션일 뿐, 그를 중심으로 뭉친 정치세력은 여전히 국민의힘에 남아있고 윤석열 자신 또한 정치적 자산(윤어게인 집단)을 온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그는 얼마 전 부정선거 음모론 다큐를 관람하며 공개행보를 한 바 있다. (사실상 출당? 이제 와서?)
- 김문수는 지속적으로 윤석열과 그 지지 집단에게 우호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가장 최근에는 공동선대위원장에 윤상현 의원을 임명헀다. 윤상현은 대표적인 반탄 측 의원이고, 극우집회를 찾아다니며 극우의 스피커 노릇을 자처했던 인사다. 그가 공동선대위원장이 되었다는 것은 김문수가 소위 ‘윤어게인’ 집단에게 일종의 보상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거시적 차원에서, 김문수의 현재 지지 세력 중 핵심 집단이 윤석열과 그 추종자 집단이라면 김문수는 그들에게 일정하게 보상해야 하는 압력에 노출된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보상과 처벌의 게임이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승자는 자신을 승리자로 만들어준 이들을 보상해야 한다. 그것은 어떤 정치체제를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정치가 성립하는 기본 구조이다. 김문수가 만약 당선된다면, ‘윤어게인’ 집단은 즉각 윤석열의 사면과 수사 중단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또한 김문수를 향해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유통할 것이다. 그들이 윤석열과 부정선거 음모론을 통해 목적하고자 하는 바는 민주당의 ‘섬멸’이다. 김문수와 국민의힘은─비록 외부의 시선과 평가로 인해 적극적으로 행하진 못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민주당을 ‘집권불능’의 상태로 몰아넣는 액션을 취하는 방식으로─그것을 보상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김문수와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절연했다’라고 보는 시각은, 그들의 핵심 지지세력 중 하나가 윤석열 추종집단이라는 점에서 무력화된다. 만약 김문수가 윤석열과 분명하게 절연했다고 선언하려면, 최소한 그가 대선후보가 된 이후라도 윤석열과 그 추종집단에 대한 출당/제명/처벌에 대한 시사가 있었어야 한다. 물론 그렇게 했더라도 그저 선거용 면피일 뿐이라는 비판을 면하긴 어렵겠지만, 최소한 내란 잔당들이 두려움을 느끼기엔 충분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이번 대선의 최초이자 포기할 수 없는 목표는 ‘내란 세력의 최소화’라는 관점을 견지한다. 국민의힘이 그런 의미의 ‘액션’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어줍잖게 ‘탈당했으니 관련없다’라는 주장은 이런 본질을 묻어버린 채 어설픈 정치공학의 프레임으로 사태를 밀어넣는 것에 불과하다.
세번째 착각: 김문수가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했으니 김문수는 ‘다르다’라는 착각
셋째, 김문수가 최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했으니 김문수는 윤석열의 후신이 아니라는 착각이다. 최근 김문수는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문수가 계엄에 대해 사과했으니, 윤석열과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묘하게 김문수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들이 항간에 퍼져있는 모양인데, 나는 이 또한 분명한 착각이자 왜곡이라고 생각한다. 김문수가 극우스피커로서 활동해온 전력을 괴악한 논리로 뭉개는 시각이다.
현재 시점에서 김문수는 분명한 극우 스피커로서 활동해온 전력이 분명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소위 ‘리박스쿨’ 사건이 터지면서 김문수가 그들과 함께 한 증거들이 나오는 상황이다. 김문수가 대선후보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마법처럼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입장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극단주의자라는 이미지를 벗으려는 노력은 당연히 할 것이다. 김문수 역시 자신에게 씌워진 멍에를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선거 때가 되어 ‘이렇게 하겠습니다’ 또는 ‘저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말은 누군들 못하겠는가? 모든 극단주의자들은 선거 때가 되면 자신은 극단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등, 현재 시점에서 분명하게 ‘민주주의의 퇴행자’ 또는 ‘독재자’로 불리기 부족함 없는 인물들을 살펴보라.
김문수는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발탁되기 이전 이미 극우적 행보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는 교회 연설 등에서 자신의 극우적 색채를 아낌없이 드러냈다. 이것은 세계관의 문제다. 그가 누구와 접촉했고, 누구와 친분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김문수가 전광훈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게 지금 와서 변명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에게 씌워진 ‘극우’라는 라벨링은 그의 행보와 세계관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다. 앞서 살펴본 ‘두번째 착각’과 연계하여, 그가 정말 ‘극단주의자’라는 오명을 벗고자 한다면 정치적 액션으로서 자신과 직접 연계되어 있던 극우집단에 대한 분명한 불이익을 약속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전후 맥락을 봐달라’는 추상적인 변명만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문수는 다르다고? 어디가 다른가? 그가 자신이 몸담았던 극우 집단에 대한 분명한 절연과 심지어 ‘정치적 불이익’을 말했는가? 그들이 공동체에 어울리는 집단이 아니라는 공개적인 비난이라도 했는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해치고 음모론을 퍼뜨리는 해로운 집단들이니, 그들의 지원은 일체 받지도 않고 신경쓰지도 않겠다는 말이라도 했는가? 그렇게 해서 ‘자신들을 살려주리라 믿었던’ 김문수에 대해 그들(극우집단들)이 ‘분노하고 실망’했는가? 그 어떤 것도 김문수는 하지 않았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민주적 원칙과 규범을 복원하려는 노력은 더더욱 중요하다. 설령 자신이 정치적으로 패배할 것을 알지라도, 공당으로서의 자세는 민주적 원칙을 지키고 복구하기 위해 극단주의 세력을 억제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비록 이번 비상계엄에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윤석열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에 대해 분명하고 확실한 불이익과 처벌을 약속하고 소위 ‘내란 세력’의 청산에 함께 했더라면, 그들은 민주당과 동등한 정치적 경쟁의 파트너로서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록 그들은 이번 대선에서 패배할진 몰라도 최소한 민주당은 그들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내란 종식’이라는 목표보다도 더더욱)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은 또 다시 권력을 넘겨줘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결언: 경쟁적 권위주의, 민주주의, 앞으로의 전망
이번 대선이 벌어지게 된 배경이 의도적으로 감춰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대통령 선거라는 이벤트가 가져오는 속성인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항간의 주장처럼 언론 지형이 특별하게 민주당에만 불리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인지는 정량적 데이터를 살펴봐야 할 일이므로, 현재로서는 확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참고할 만한 것은, 연초에 발표된 V-Dem의 평가 결과에 따르면 언론들은 대체로 보수 정부에선 ‘순종적’이고, 민주당 정부에서는 ‘비판적’으로 변하는 패턴이 발견되었다는 것 정도겠다.
현재 시점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정도인 것 같다. ①민주당의 집권 자체를 위협적으로 보고,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무슨 수단이든 동원해도 좋다는 극단주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수준까지 성장했다는 것, ②‘쿠데타’라는 초유의 사태를 통해 향후 국민의힘의 집권 가능성이 아주 큰 폭으로 줄어든 상황인 만큼, 향후 국민의힘을 비롯한 우익(극우) 계열은 (만약 집권하게 된다면) 집권 이후 민주당을 집권 불능의 상태로 몰아넣는 공격을 통해 경쟁의 장을 기울이려 노력할 유인이 충분해졌다는 것─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경쟁적 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ism’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특히, 두번째 진단은 좀 더 깊게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Levitzky & Way (2025)는 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 "The Path to American Authoritarianism"에서 미국이 트럼프의 집권 이후 ‘경쟁적 권위주의’로 후퇴할 위험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경쟁적 권위주의란, 이름 그대로 경쟁은 존재하되 민주주의는 아닌 체제를 말한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는 무수히 다른 형태의 정치체제들이 놓여있다. 어떤 권위주의들은 독재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경쟁을 선택한다. 야당이 존재하고, 야당이 선거에 후보를 내며 심지어 독재자들의 충복들이 일부 패배하기도 한다. 겉으로 볼 때에는 일견 민주주의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체제에서 경쟁은 결코 공정하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않다. 권력과 자원을 가진 여당은 권력기구를 이용해 야당을 기소하고, 범죄자라고 부르며, 이미 조직된 네트워크를 통해 조직적으로 금권을 뿌리거나 언론을 통제하여 야당에 불리한 기사를 대거 생산한다. 시민들이 자신들을 고발하기 위해 시민단체를 만들거나 가두시위를 벌인다면, 시민들이 만든 단체의 보조금을 삭감하거나 아주 엄정한 잣대를 들이밀어 도덕적 흠결을 찾아내어 비난한다. 어용단체를 조직하여 소위 ‘맞불집회’를 열 수도 있다. 권력과 자원을 가진 이들이 ‘운동장을 기울이는’ 방식은 무수히 많다.
민주주의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에게 철저히 유리하게 작동하는 정치체제는 영구집권 또는 장기집권을 꿈꾸는 정치세력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지다. 그들은 경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세워 자신들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운동장을 마음껏 기울이며 자신들이 ‘공정하게 승리했다’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정적 순간에 권력을 내려놓지 않는다. 다시 말해 경쟁적 권위주의에서 이들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이 내어줄 수 있는 ‘일부’의 패배만을 받아들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여당이 패배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패배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비록 패배했을지라도’ 결과에 승복하는 것을 말한다. 만약 정당이 패배의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면, 패배함으로써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진다면, 정당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지면 모든 것을 잃기 때문에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권력을 다시금 빼앗으려 할 유인이 매우 높아진다. 때문에, ‘선거’라는 게임으로 유지되는 민주주의가 잘 정착하려면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문제는 항상 현실적 조건들이다. 지금 국민의힘과 그 지지세력이 당면한 현실이 정말로 ‘모든 것을 잃게 될’ 상황이라는 점에서 저런 명제들이 과연 얼마나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가장 큰 원인은 윤석열이 쿠데타를 벌였다는 사실 때문이겠지만, 두번째 책임은 국민의힘이 제때 회복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모든 것을 잃는’ 것은 그들 자신이 선택하고 자초한 면이 크다는 게 내 생각이다. 청산, 소멸, 절멸의 두려움이 지금 국민의힘을 지배하고 있는 정서라고 본다. (이미 이런 정서는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를 지배하는 정서라는 일각의 분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과연 패배를 받아들일까?
선거는 반복되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국민의힘의 재집권도 그렇게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탄생하더라도 국민의힘은 5년만에 또 다시 집권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되었을 때 국민의힘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현재 시점으로 비춰보자면, 집권을 발판 삼아 민주당을 ‘영구 집권 불능 세력’으로 만드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내일 있을 대선에서 김문수가 당선된다면 그들의 1차적 목표가 민주당의 제거 또는 식물 상태로 만드는 활동이리라는 것 또한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내적으로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외적으로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라는 분노에 노출되어 있는 조건, 나아가 현재 그들의 핵심 지지세력이 ‘윤어게인’ 집단이란 점에서 그들이 선택할 옵션이란 게 얼마나 되겠는가.
이재명이 ‘정치보복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내란 행위를 처벌하는 게 어째서 ‘정치 보복’으로 호명되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승복하라’라는 의미라면 이해할 법한 말이다. 지금 가장 두려워할 건 저들이니까.
내일이면 대선이다. 나에겐 지난 겨울을 사무치게 떠올리는 날들이었다.
국힘 의원 "12.3부터 오늘까지 반역의 시간, 이재명 처단해야"
[12.7 탄핵박제 105인 - 38회 박상웅] 김문수 후보 지원 유세에서 "이재명과 그 일당이 계엄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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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6월 2일, 이 기사를 읽었다. 아침부터 험한 말을 하고 싶지 않으나, 기록으로 남겨둔다. 당신들은 계엄 이후 탄핵표결에 집단으로 불참했던 그 때,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당사가 불타고 사지가 찢겨나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던 걸 저주로 여기라. 차라리 그 때 당신들이 비참하고 끔찍한 죽음이라도 당했다면, 지금쯤 분을 삭힌 시민들이 자성의 목소리도 좀 내고 당신들은 곁가지로 동정표라도 좀 얻었을 것이다. 만회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너희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무엇을 한들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당신들의 몰락과 죽음 앞에서 침을 뱉고 춤을 추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