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문제를 해결한다고 여기저기서 간담회도 열고 컨퍼런스도 열리는 모양인데 참석해보진 않아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 소위 '청년 문제'라고 불리는 것을 '청년 문제'라는 두루뭉술한 네이밍으로 몽뚱그리고 문제를 이렇게 접근한다면 백날 간담회 열어봐야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만약 기존 정치인들과 간담회를 연다고 한다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는 명백한 답이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글은 잠정적으로 정치인들에 대한 요구들이다. 정치인들의 대답이 꼭 학문적으로 엄밀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나는 정치인들이 문제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대안을 제시하고 그를 통해 시민들을 묶어내는 ‘기능적인’ 일을 수행하는 직업이라 생각한다는 점에서, 가능한 한 문제점들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짚어내려고 했다.
1.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청년'의 범위를 어디까지 보고 있고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청년 문제'라는 네이밍은 두 가지 측면에서 딜레마를 안고 있다. 하나는 범위의 문제다. '청년'이라고 몽뚱그릴 경우 무엇을 기준으로 '청년'을 정의할 것인지가 문제다. 가장 편리한 건 나이다. 특정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청년’으로 묶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잠정적으로 특정한 나이대의 청년들이 동질적인 집단이라고 가정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청년 집단이 동질적인가? 피상적인 경험으로 보거나 실증데이터로 보거나 이 가정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번째는 문제의 고유성이다. 만약 계층성까지 고려하여 특정한 나이대의 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묶어내는데 성공했다고 하자. 이 문제가 ‘청년’들의 고유한 문제인가? 다른 세대, 다른 계층에는 적용되지 않는 문제인가? ‘청년 문제’라는 네이밍은 단순히 ‘청년’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포괄성 내지 암묵성에 기대어 문제를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회피한다. 청년 문제가 문제가 되려면 청년들이 겪는 문제의 고유성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
2. 현재 청년들이 당면한 문제들 중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정책에는 항상 우선순위가 있게 마련이고, 청년들이 겪는 문제는 다차원적이다. 자원은 한정적이고 정치인들의 임기는 짧다. 달리 말하면 선심성으로 정책을 내던지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정책이 왜 중요하고 왜 먼저 해결해야 하는지 비전이 있느냐는 점이다. 청년들이 겪는 문제들 중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대답해야 한다.
3. 지금까지 청년정책들은 대체로 일회성 보조정책이 메인인데 장기적인 생애소득주기에 맞추어 복지 정책을 설계하려면 무엇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지? 기존 정책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부동산 문제와 코인 열풍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청년들이 겪는 문제들 중 하나는 기성세대에 비해 안정적인 생애소득주기를 설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장 주거불안 문제라든지 미취업 기간 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보조 정책들은 상당히 많이 나와있지만 장기적으로 이들이 미래에 생애소득주기를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해주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 앞의 2번 질문과 연계될텐데, 조금 더 포괄적으로 볼 때 기존에 설계된 정책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청년들에 타겟을 맞춘 정책을 설계하기 위해 기존 정책에서 보완하거나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4. 청년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대표성의 문제? 아니면 정치인의 책임성(혹은 반응성)의 문제?
청년들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의심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청년들이 효과적으로 대표되지 못하기 때문에 부실한 정책이 나온다는 것이다. 정책의 부실함은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의사소통과정에서 효과적으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청년 몫의 ‘감투’를 늘려주는 것은 그런 점에서 하나의 해결책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기존 정치인들이 청년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즉 수직적 책임성이 약하기 때문일 수 있다. 청년들은 ‘표’가 안된다는 것이다. 두루뭉술한 ‘청년’ 집단은 결집이 어렵다는 점에서 정치인들에게 위협적인 표가 아니다. 만약 청년 집단이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했다면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정책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만약 청년 정책이 부실한 이유가 청년-정치인 사이의 수직적 책임성이 허약하기 때문이라면 책임성을 부여할 또다른 메커니즘을 제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나는 책임성의 문제를 거론하는 정치인을 본 적이 없다.
5. 당 내외적으로 청년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거나 특정 집단의 의견이 과대대표되고 있다면 의사결정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사결정구조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 해소할 것인지?
당 내부적으로 청년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지 않다면 의사결정구조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해볼 일이다. 당은 다양한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집단이 가지는 힘이 다르므로 의사결정과정에서 각 그룹의 선호가 동등하게 반영되기 어렵다. 청년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데에는 의사결정구조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에도 청년들에게 가산점을 부여해주는 제도가 있기는 하나, 그것은 청년들의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한 장치일 따름이다. 의사결정과정에는 비제도적 요소들이 강하게 작동한다. 당 내 청년들의 의사가 효과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이유가 다른 집단이 행사하는 비제도적 힘이 강하기 때문이라면, 즉 특정 집단이 과대대표되고 있는 것이라면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6. 청년 vs 기성세대로 대립하는 구도의 세대론에 동의하는지?
어쩌면 가장 근본적일 수 있는 질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청년 vs. 기성세대로 대표되는 현재의 청년담론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입장과는 별개로 기성 정치인들이 이러한 담론에 동의하느냐 아니냐는 대응 방식에 있어 큰 차이를 낳을 것이다. 만약 청년과 기성세대가 서로 대립한다면 문제의 해결책은 기성세대의 몫을 빼앗아 청년들에게 나누어주는 형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청년 문제가 기성세대와의 대립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기성세대의 몫을 빼앗는 것은 대안이 아닐 것이다. 청년 담론을 단순히 소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이라면 기존에 유통되는 담론에 문제는 없는지 구체적으로 점검해봐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을 내놓은 정치인을 아직 보지 못했다.
7. 이런 간담회를 통해 실제 정책으로 반영되고 시행되려면 전체적인 정책입안과정에서 어떤 점이 좀 더 보완되고 강조되어야 한다고 보는지?
간담회에 대해 개인적으로 가지는 가장 큰 불만 중 하나인데, 나는 간담회 이후 그것이 실제로 정책에 어떠한 형태로 반영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체감되는 효능감이 상당히 낮다. 간담회를 열었을 때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실제 정치 영역에서 어떤 문법으로 구체화되어 가는지는 알지 못한다. 홍보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정말 단순히 일회성 쇼로 끝날 수도 있다. 나름대로 숙의과정을 거친다면 토론문이나 발언 내용들은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 현재 국회입법조사처에서는 세미나/간담회 자료를 공개하고 있지만, 실제 토론과정에서 어떤 내용들이 토론으로써 오갔는지는 알기 어렵다. 이런 자료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고 관리되며 대중에게 충분하게 공개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불만에서 나온 의견일 뿐이다. 간담회/세미나 → 토론 → 정책입안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 중에서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더 강조되어야 할지에 대해 정치인들의 답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8. 청년들의 참여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청년들의 참여를 보다 독려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지?
어쩌면 정치권에서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청년들의 참여가 저조해서일 수도 있다. 당 내에 청년들의 참여가 저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청년들이 학업과 취업이라는 족쇄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공부하기도 바쁘고 취업준비도 바쁜데 누가, 무슨 인센티브로 당에서 활동하고자 하나? 청년들은 당에서 활동할 인센티브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야망을 가진 개인이라면 이 모든 악조건을 견디고자 할테지만, 그런 열정 넘치는 청년들에게는 소위 ‘감투’를 구실로 한 달콤한 유혹과 토사구팽이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청년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한다면, 청년들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무슨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치며
이 글의 출발은 모 단체에서 ‘청년 문제에 대해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어떤 질문이 좋겠느냐?’라는 요청을 받은 후부터다. 청년 문제에 대해 여러 대안들이 나오고 좋은 활동을 해주시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정작 나는 정치인들에게서 구체적인 답변을 들은 기억이 없다. 나름 기사를 꼼꼼히 살펴본다고 생각하는데도 청년 문제에 대한 정치인들의 구체적인 답변들은 찾기 어려웠다. 어쩌면 내가 그저 무심하게 지나쳤을 수도 있다. 청년 문제를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사실 무의미하다고 생각되고, ‘청년 문제’라는 네 글자에 대해 내가 더 이상 지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단어가 주는 모호함이 싫다. 어쨌든 나도 청년 당사자인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정치인들이 언젠가는 구체적인 답변을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과문한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인터뷰 기사라도 있으면 추천해주시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