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live/edtxjGnkG_Q?feature=share
엊그제 스승의날을 맞아 지도교수님 제자모임을 했는데 이런 방송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냉큼 봤다. 훌륭한 프로그램이고, 이런 논의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공론조사라고 해서,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와는 다르게 시민대표단을 무작위로 선출하고 이들에게 특정 주제에 대해 전문가 집단과 일정 기간 학습시킨 다음, 토론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의결하는 방식이다. 세계 최초라고 하는데 기획이 참 좋다.
사실 정치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맞닥뜨리는 가장 곤란스러운 편견들은 국회와 정당에 대한 불신이다. 국회의원수를 줄이라든가, 비례대표를 없애야 한다든가 하는 주장들은 정치를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참 다루기 곤혹스럽다. 그 주장의 저의에 담겨 있는 분노와 불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덮어놓고 수용하기에도 굉장히 위험한 주장들이기 때문이다.
선거와 정당과 관련해서는 크게 네 가지 편견과 주장들이 있다.
(1) 국회의원들은 (주어진 보수에 비해) 일을 하지 않는다.
(2)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는 특혜가 너무 많다.(그러므로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 최저임금으로 해야 한다 등)
(3) 비례대표제는 없애야 한다.
(4) 국회의원수를 줄여야 한다.
얼핏 들어보면 그동안 국회에 쌓인 불신이 크기 때문에 (1)과 (2) 정도는 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와 현장을 살펴보면 네 가지 주장 모두 거짓과 편견으로 점철돼 있다. 심지어 민주주의에 해롭기도 하다. 내가 보기엔 순수하게 악의와 질투와 분노로 점철돼 있는 주장들도 있다. 이 주장들은 왜 해로운가.
(1) 국회의원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일을 정말 많이 하고 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https://likms.assembly.go.kr/bill/stat/statFinishBillSearch.do)은 국회의 회기별 법률처리현황을 제공한다. 21대 국회서 지금까지 처리된 법안 총계는 총 21,341건, 그 중에서도 의원발의법안은 19,813건이다. 발의주체별로 살폈을 때 정부안의 반영률이 높기는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은 4,757건의 법안을 처리했다. 국회의원의 일이 입법이라는 걸 고려해보면 이들은 비록 이런저런 구설도 많고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는 좋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입법의 직무는 (개별 법안이 얼마나 좋은 법안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의원들은 법률안을 처리할 때 법률안 자구 심사 등 산하 기구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 사무처 산하의 법제실, 전문위원, 입법조사처 등 의원들의 원활한 입법 활동을 위한 기구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들 기구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015년 기준, 19대 국회 당시 발의된 의원 발의 법안 수는 20,000여 건에 달했지만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전문인력은 318명에 불과했다(정극원, 2015). 이조차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국회의원들은 뭘 해야 '일을 한다'라는 소리를 들을까? 여러모로 국회에 대한 불신을 증거하는 편견으로 보여서 마음이 좋지는 않다. 과도한 정쟁이 문제인가. 어디서부터 이 불신을 풀어야 할까?
(2)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는 특혜가 너무 많다?
국회의원의 연봉이 대략 1억 5천 정도 된다. 사기업으로 치면 대기업 부장급 연봉이라고 한다. 이탄희 의원이 국회의원 연봉을 줄이자고도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은 얼마나 받아야 적정할까? 국회의원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해야 한다거나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측은 아마도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뉴스로 보여지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부패하고 무능하다. 이렇게 쌓인 이미지로 봤을 때는 최저임금도 아깝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최저임금으로 한다고 하자. 실제로 국회의원들이 하는 업무량을 생각해볼 때 최저임금은 국회의원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적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각자의 도덕적 판단이 있을테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최저임금은 국회의원이 직무를 수행하기엔 부당한 금액이라고 본다. 누군가는 KTX 무료를 언급하기도 하던데, 일반 사기업에서도 출장비를 지급하지 않나. 물론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는 여러 특권들이 있다. 면책특권이라든지, 불체포 특권 등 정말 '특권'으로 명시된 것들이 존재한다. 이 특권들이 정말 불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토론이 필요할 수 있겠다. 다만 이러한 특권들조차 국회의원들이 입법활동 과정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안전장치들로서 도입된 것들이 많다. 그러한 배경들이 고려되어야 할 필요는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는 진짜 특혜라고 하면 (내가 볼 땐) 정보의 특혜다. 아무래도 국회의원들은 고급정보를 가장 먼저 접한다. 이러한 정보들은 일반인들은 접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러나 정보의 비대칭을 '특혜'라고 볼 수 있나? 정보의 비대칭을 활용해서 이득을 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 장치가 잘 작동되느냐는 별개의 문제겠다. 그러나 이러한 비대칭 자체가 특혜인지 난 잘 모르겠다. 국회의원을 향해 특혜라는 비난이 들어갈 때에는 '특혜'라는 말 안에 온갖 비대칭 상황을 우겨넣어 퉁쳐버리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비판이 제대로 들어갈 수 없다.
청렴하고 검소한 이미지만을 강조하다보니, 어떤 직업이 얼마를 받아야 적정한지에 대한 논의가 부재하다. 국회의원도 전문 직업인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조금 달라질까? 청소노동자는 부동산 재테크 해서 월 천만원 벌면 안된다고 민원 넣는 사회인데 뭘 더 바라겠나. 위선이 다른 게 위선이 아니다. 자기 임금 올려주길 바라면서 다른 직업의 적정 임금 논의는 온갖 굴레를 씌워 막아버리는 게 위선이다.
(3) 비례대표제를 없애야 한다?
선거가 추구하는 두 가지 축은 비례성과 책임성이다. 둘 다 중요하다. 그러나 비례성의 중요성은 종종 무시된다. 비례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즉 내가 던진 1표가 의석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비례적이어야 한다. 내가 가진 1표와 다른 사람이 가진 1표의 가치가 다르다면 뭐하러 투표하는가.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존립시킬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는 1인 1표, 그것도 동등한 1표라는 가정이다. 물론 현실에서 1인 1표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지니는 표의 가치가 완전히 동등하게 구현되기란 어렵다. 그렇기에 비례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지속적으로 수반돼야 한다.
이런 연유 탓에 내 개인적으로는 비례대표를 없애라는 주장만큼 무책임한 주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엔 순전히 기성 정치에 대한 분노와 무지와 (비례대표를 폐지함으로써 이득을 얻을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점철된 주장인데도 정치혐오에 기생하여 힘을 얻는 주장이다. 비례대표 없애고 전원 지역구로 뽑으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구 이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역구 이슈에서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지역 유지들이다. 소선거구제가 평범한 일반 시민들을 잘 대표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나? 게다가 지역구 투표방식은, 특히 소선거구제는, 투표의 특성상 사표가 무더기로 나온다. 선거를 왜 하고 민주주의를 왜 하는가? 사표가 된 사람들은 누가 대표하나?
선거제도는 각각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이 있다. 소선거구제는 책임성 측면에서 우월하다. 그러나 비례성 측면에서는 취약하다. 정당의 득표율이 실제 의석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왜곡이 발생한다. 인구수 기준으로 지역구를 재할당하면 비례성을 확보할 수 있나? 그러려면 국회의원 수를 지금보다 충분히 늘려야 한다. (4)에서 살펴보겠지만 지금 현행 국회의원수는 줄일 게 아니라 오히려 부족하다. 국회의원수를 줄이면서 비례성을 확보하는 가장 빠른 방식은 국회를 없애고 차라리 왕을 선출하는 것이다. 전국을 1개의 권역으로 만들어버리면 비례성 문제는 해결된다. 그런데 우린 그런 걸 민주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4) 국회의원수를 줄여야 한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은 표의 등가성이다. 표의 가치가 서로 다르다면 민주주의는 존립할 수 없다. 표의 등가성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좋은 건 자기 자신이 대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물리적 제한 때문에 대의제가 생겨난 것이다. 300명이라는 숫자는 표의 등가성을 잘 확보하는가? 여러 가지 기준을 가져올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인구비례 기준으로 보았을 때 현행 300명이라는 숫자는 대표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숫자이다. 의원정수 산출에 대해 연구한 2003년 김도종, 김형준의 연구에서는 OECD 국가를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적정 의원수가 37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 국회의원수를 줄이면 국회가 효율화되는가? (1)의 주장과 맞닿아 있는데, 국회는 특성상 절대 효율적인 기구가 될 수 없다. 국회를 효율화시키는 건 대체 어떤 관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수를 줄이면 대체 무엇이 효율화가 되나? 법안을 많이, 제대로 처리하려면 오히려 지금보다 의원정수를 늘려야 한다. 1000개의 법안을 두고 100명이 처리하는 것과 50명이 처리하는 것 중 어떤 게 더 효율적이겠나? 법안 처리 속도가 문제라면 국회를 효율화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차라리 국회를 정부발의법안의 거수기로 만드는 것이다. 의원들은 정부발의법안에 대해 그저 찬반 표결만 던지고 법안을 빠르게 처리해주면 된다. 여당이 다수당일 경우엔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정상적인 국회라고 볼 수 있겠는가. 그걸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나. 대체 뭘 '효율화'시키겠다는 건가.
전반적으로 국회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들이 나온다는 사실은 잘 알겠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정치 발전에 바람직하지도 않고, 어떤 주장은 심지어 해롭기도 하다. 비판이 정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안적인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방송은 굉장히 의미 있다. 공론조사를 통해 선거제에 대한 정보를 접한 시민들이 기존의 불신을 조금은 걷어내고 진지하게 논의에 참여할까? 아니면, 오히려 기존의 믿음을 더 강화하는 선택편향에 빠져서 갈등이 더 심화될까? 여러가지 질문이 떠올랐고, 흥미로운 기획이다. 간만에 정말 재밌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