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구속 취소와 함께 여러 소식들이 쏟아졌다. 탄핵 기각이야 가능성 없는 이야기이지만, 탄핵 기각 이후의 시나리오는 상당히 끔찍할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들의 조각을 모았다.
만에 하나 탄핵이 기각된다면
윤석열의 탄핵 심판 변론을 듣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결국에는 전부 듣지 못하고 꺼버렸다. 김계리 변호사의 “계몽” 발언도 의아한 부분이었다. 전문 직업인으로서 가능성이 없는 억지 궤변인 걸 뻔히 알텐데 왜 저렇게 말도 안되는 궤변을 펼치는 것일까?
윤석열의 궤변을 듣고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뻗치기보다 대체 왜 먹히지도 않을 거짓말을 저렇게 뻔뻔하게 하는걸까, 라는 생각만 계속 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윤석열의 구속 취소를 두고 다들 머리가 지끈지끈할 것 같은데, 일단 탄핵은 큰 무리없이 인용될 것으로 본다. 윤석열 측근은 벌써 기각이라도 된 것처럼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 독재자를 곁에서 지키는 충신들이 윤석열에게 아부하기 위해 정보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들의 생각대로 윤석열이 복귀한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잠시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선 나중에 좀 더 자세히 풀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생각의 파편들을 잠시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복귀한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할 일은 민주당을 영구히 집권 불가능한 식물정당으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윤석열 입장에서는 ‘통치’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 윤석열 입장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민주당 그 자체다. 그는 민주당을 지속적으로 ‘반국가세력’으로 불러왔다. 국민의힘은 내란 정당으로 해산 위기에 처해있다. 직무 복귀한 윤석열이 정말 ‘통치’를 하지 않는다면 윤석열은 또다른 정치적 위기에 몰릴 수 밖에 없다. 이는 국민의힘 또한 마찬가지다. 따라서, 윤석열이 ‘통치’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직무 복귀 직후 야당과 시민사회를 강하게 억누르고 영구히 기능하지 못하도록 제압해 둘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민주공화국의 영구적 포기와 함께 ‘테러 독재 체제’의 수립일 수 밖에 없다.
(2) 실질적으로 윤석열의 지지 기반은 극우-파시스트 세력이다. 극우 개신교를 위시한 파시스트 세력은 민주당의 해산을 요구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일당독재를 원하는 집단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에 부합한다. 좀 더 정확히는 87년 체제 자체를 전복하는 것이 이들의 정치적 목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들에게 ‘민주당이 집권 가능한’ 세계는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달리 말하면, 극우 세력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야당으로의 정부 교체’라는 핵심 원칙을 수용하지 않는 집단이다. 따라서 이들을 지지기반으로 가진 윤석열 입장에서는 복귀 후 민주당을 해산시키거나 최소한 영구적으로 집권이 불가능한 정당으로 만드는 것이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일이 된다. 이들의 입장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역할은 영구히 집권하지 못하되, 대외적으로 ‘야당도 있음’을 선전하기 위한 도구로서 기능하는 정도면 족하다고 여길 것이다.
(4) 이들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려야만 생존할 수 있는 집단이다.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이들은 처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폐기하면, 그들 자신에 대한 보상은 극대화된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민주주의를 폐기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민주당을 해산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라는 해괴한 주장과 함께.
(5) 윤석열의 ‘테러 독재 체제’ 수립은 2차 계엄령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야당과 시민사회에 대한 대대적이고 노골적인 통제를 시도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친위대를 활용하여 적극적인 ‘테러’ 활동을 장려하는 수준에서 이뤄질 공산이 크다. '의회 무력화'라는 초유의 반민주적 행위는 지지층에 의해 '의회 정상화'라는 선동으로 정당화될 것이다. 또한, 이들 극우 집단에 의해 시민사회는 대대적으로 ‘사냥’에 노출될 것이다. 이미 지금도 노골적으로 폭력을 선동하는데, 탄핵 기각 이후 승리감에 고양된 이들은 ‘자경단’ 명목으로 자신들이 찍어둔 ‘좌파’들을 사냥하러 다닐 가능성도 있다. 활동이 얼마나 극단적이든, 윤석열 입장에서는 이들을 십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테러를 장려하고, 그런 활동으로 인해 반대파가 위축된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다.
(6) 윤석열이 독주하고 국민의힘이 지원하는 한국은 더 이상 '정권 교체'가 이뤄지지 않는 독재국가가 될 것이다. 형식상 선거는 이뤄지지만 '야당'으로의 교체는 이뤄지지 않는 eletoral autocracy로 변모되는 것이 가장 근접한 시나리오가 되지 않을까 싶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건인 alternation이 충족되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민주주의를 지키기를 포기했다고 봄이 현실적이다. 당장의 정권 재창출과 정권 보전에만 급급한 집단이 되어 스스로 반역 집단이 되길 선택했다. 나는 이들을 이제 ‘반역 집단’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생각한다. 의견의 다양성, 화해와 타협, 정치적 조정 같은 수사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를 지킬 의지가 있는 집단일 때에나 허용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개미 새끼 한마리도 남기지 않는 처절한 보복이다. 민주정을 유린하고 스스로 민주정을 포기하길 선택한 정당과 집단에게는 일말의 생존의 기회조차 없이 가혹하게 몰아붙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쓸려나갈 것이다.
윤석열 구속 취소를 보고
거짓과 망상을 추종하는 집단이 정권의 기반이 되면 정권은 그들의 망상을 보상해주기 위해 움직일 수 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그건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망상을 정당화해줄 정치적 승리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런 환경에선 양심있고 성실한 사람들이 능력을 펼치기 어렵다. 달리 말하면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윤석열의 구속 취소 담화문은 철저하게 망상과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가 지칭하는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숨어 있던 반헌법적 세력들의 실체”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규명되지 않았다. 그는 취임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야당을 향해 “반국가적 세력”이라는 적대적 언어를 사용했다.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는 간첩 세력”이라는 워딩은 야당과 시민사회 전반을 향한 적대적 언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윤석열은 자신의 망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리고 지지층의 망상을 보상해주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은 대체로 조잡하고 초라할 것이다. “선관위 간첩 99명” 음모론이 주동자 안병희의 구속과 함께 초라하게 사라진 것처럼.
윤석열의 담화문은, 헌재에서 파면 결정이 나더라도 불복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현재로서 윤석열의 최선의 선택은 가능한 더 강경한 워딩으로 지지층을 결집시켜 헌재 파면 결정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위력을 행사함으로써 협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모두들 외면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윤석열 석방을 기점으로 한국에서 실질적인 내전이 벌어졌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석열은 어떤 결정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의 지지층이 노골적인 테러행위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윤석열의 파면을 수용하지 않고 체제를 뒤흔들어 리셋하는 편이 보상이 더 크다. 민주주의 규칙 안에서 국민의힘은 처벌의 위험에 노출되지만, 윤석열이 복귀하면 국민의힘은 영구 집권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가혹한 결정 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운명에도, 그들에게도.

“아무 일도 없었다”라는 주장의 파렴치함에 대해
이번 12.3 내란 사태에 대한 하나의 리트머스는 다른 어떤 주장보다도 12.3일에 "아무 일도 없었다"라는 주장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다른 의견"으로 관용할 것이 아니라 사기꾼으로 낙인찍고 공론장에서 추방해야 할 인간들이다. 세치 혀로 자신들의 거짓을 정당화하는 파렴치한 인간들이라고 간주해도 좋겠다. 윤석열 탄핵 기각은, 이런 뻔뻔하고 파렴치한 거짓말들이 공공연하게 떠들어지는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2월 3일, 계엄군은 국회로 들어갔고, 심지어 ‘창문을 깨고’ 국회 본청 안으로 진입했다. 민주공화국에서 ‘비상사태’를 핑계로 군대가 국회를 접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상사태를 핑계 삼아 군대를 국회로 투입해도 된다는 원칙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되는 국가는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는 바로 의회이기 때문이다. 군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국회로 가서는 안 된다. 국회 활동을 무력화할 수도 없다. 그러나 윤석열은 뻔뻔하게도 포고령 1호에 ‘국회 활동 금지’를 넣었고, 군대를 국회로 투입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라는 주장은 12월 3일 새벽, 온 몸으로 계엄군을 막아냈던 시민들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는 말이다.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이 대통령에 의해 무너질 수도 있었던 사건에 대한 뻔뻔한 정당화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원칙의 문제를 결과론으로 치환하는 뻔뻔하고 파렴치한 주장이기도 하다.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국회를 지켰고, 우린 그 장면을 생중계로 목격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그 날 모두가 목숨을 걸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라는 주장은 민주정을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아주 솔직하게 더 증오심을 담아서 말하자면, 12월 3일에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민주주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얼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탄핵이 기각된다면, "사실 그 날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은 전부 빨갱이였으니까 쏴죽였어야 했다"라는 주장이 더 공개적으로 말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정치적 미래는 아프가니스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아프간은 탈레반에 의한 테러 독재. 이곳은 극우에 의한 테러 독재.
민주주의를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달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규칙을 마음대로 어길 준비가 된 자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규칙을 이용하는 것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얼마나 조잡한지는 금방 드러날 것이다.